[특파원 칼럼/김창원]日의 승부수, 온실가스 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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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9일 04시 30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지구온난화 방지의 파수꾼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에서 2020년까지 일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줄이는 내용의 야심 찬 목표를 내놨다.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의 미지근한 태도와 대조를 이뤄 일본의 화끈함은 더욱 돋보였다.

하토야마 총리의 25% 감축 계획은 2013년 이후부터 2020년까지 7년 동안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새롭게 규정하는 ‘포스트 교토의정서’ 채택을 앞두고 발표됐다. 선진 8개국과 개발도상국 7개국 등 15개국 정상은 2008∼2012년의 나라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교토의정서(1997년)의 후속 협정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모인다. 하토야마 총리는 3개월 앞서 선수를 친 셈이다.

하지만 25% 감축안은 정작 일본 내에서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재계에서는 무리한 목표 때문에 산업계의 비용 부담이 늘게 됐다며 신임 총리의 ‘오버’를 탓하고 있다. 눈치껏 하면 될 일을 굳이 자청하고 나섰다며 볼멘소리도 나온다. 일견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자국 내의 이 같은 반발을 무릅쓰고 하토야마 총리가 ‘과욕’을 부린 까닭은 무엇일까. 선진국으로서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서 지구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의도로만은 읽히지 않는다. 실마리는 일본 에너지절약 기술의 실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제조업의 에너지절약 기술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일본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kWh/달러·2007년 기준)은 0.39로 한국(0.78)의 절반에 불과하다. 동일한 가치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한국 제조업은 2배의 에너지를 쓴다는 의미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철업의 경우 일본은 강철 1t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석탄이 평균 0.6t인 반면 미국과 유럽은 각각 1t, 중국은 1.5t을 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신형 프리우스는 가솔린 1L당 38km(공식 연료소비효율 기준)를 달릴 수 있어 세계 상용차 가운데 독보적이다.

일본의 친환경기술도 부럽지만 개발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정부 정책도 눈길을 끈다. 일본은 지난해 세계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재정을 풀어 내수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돈을 푸는 데도 친환경기술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 깔려 있다. 에코포인트와 친환경자동차 보조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코포인트는 TV 냉장고 등 에너지 다소비형 가전을 에너지절약형 제품으로 바꾸면 정부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나눠주는 제도로 관련 예산이 3000억 엔(약 4조 원)에 이른다. 연비가 높은 차를 살 때 주는 친환경자동차 보조금 예산도 3700억 엔(278만 대분)이다. 기업이 환경기술을 개발해 상품화하면 정부가 수요를 일으켜주는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생산이 늘면 제조원가가 낮아져 더욱 경쟁력이 생긴다.

영국 정부는 7월 지구온난화대책 관련 보고서에서 세계 환경시장 규모가 2015년까지 약 4조3000억 파운드(약 7조 달러)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경산업이 워낙 빨리 크는 바람에 지난해 3조 파운드로 잡았던 것을 40%나 늘려 잡았다. 우리나라 연간 GDP의 7배에 이르는 시장이 불과 6년 후에 열리는 셈이다.

이제 막 꽃을 피우고 있는 세계 환경시장에서 ‘환경기술 선진국’이라는 국가브랜드 선점이 가져올 효과는 간단치 않다. 일본의 온실가스 25% 감축안이 새삼 두려워지는 이유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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