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14>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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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우승상 조참은 3만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되돌아가 아직도 항복하지 않은 제북(齊北) 여러 고을을 거두라. 저현(著縣)에서 탑음(R陰)으로 나아가되, 본진과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 언제든 적이 세력을 집중하거나 다른 곳에서 원병(援兵)이 이르면 나의 부름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기장(騎將) 관영은 이끌고 있는 낭중(郎中) 기병에 2만을 보태 줄 터이니, 재상 전횡을 뒤쫓도록 하라. 박(博) 땅으로 가서 남아 있는 적의 기마대를 쓸어버리고 전횡을 사로잡되, 또한 나의 본진과 항시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하여 언제든 적의 집중이나 원병에 함께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신이 그렇게 대장군으로서 군령을 내리자 장수 하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교동(膠東)에 있는 장군 전기(田旣)나 성양(城陽)으로 달아난 임시 재상 전광(田光)은 어찌합니까? 장군 허장(許章)도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것들은 병이라 해도 옴이나 버짐같이 하찮은 살갗의 병이다. 제북의 여러 성이나 전횡처럼 배나 가슴의 중병이 아닌 만큼, 제왕 전광을 사로잡은 뒤 다스려도 늦지 않다.”

한신은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조참과 관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만 두 분 장군께서는 되도록 빨리 우리 서북(西北)에 남은 우환거리를 없이하고 돌아와야 하오. 고밀(高密)을 오래 그냥 두면 그 사이 전광이 무슨 요사를 부릴지 알 수 없소.”

그리고 자신은 임치에 머물면서 남은 본진(本陣)을 정비했다. 조참과 관영이 등 뒤를 깨끗이 쓸고 돌아오면 다시 대군을 하나로 모아 고밀성에 들어앉은 제왕 전광을 칠 작정이었다. 조참은 제북을 평정하는 데 보름을 기한하고 임치를 떠났다. 그러나 일찍이 패왕 항우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넉 달이나 휘젓고 다녀도 온전히 평정하지 못한 제나라였다. 도성 임치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제왕이 아직 고밀에 버티고 있는데 제북이 순순히 항복할 까닭이 없었다.

조참과 그가 이끈 3만 군사는 아직도 제나라 수장이 지키고 있는 그 현성(縣城)을 떨어뜨리고 저현을 거두어들이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다. 그리고 저현에서 살아 도망간 패군(敗軍)을 받아들여 악착스레 버티는 탑음을 힘들여 항복시키고 나니 벌써 기한한 보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조참은 무리하게 군사를 내몰았으나 맞서는 제북 군민(軍民)의 기세는 조금도 꺾일 줄 몰랐다. 어렵게 노현(盧縣)을 평정한 뒤 격현성((격,력)縣城)을 에워쌌을 때는 벌써 한 달에 가까웠다.

어려운 싸움을 하기로는 재상 전횡을 뒤쫓아 박양(博陽)으로 간 관영이 더했다. 전횡은 원래가 패왕 항우와도 맞서 지지 않은 맹장일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별로 손상되지 않은 제나라 기마대를 이끌고 있었다. 거기다가 박양에서 급히 거둬들인 군사가 보태져 보기(步騎) 5만을 일컫고 있었다. 관영이 아무리 승세를 타고 있다 해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다.

그 바람에 박양 성벽에 의지한 전횡의 군사와 녹각(鹿角)을 세우고 누벽을 쌓은 관영의 군사 사이에 지루한 공방전이 몇 날이고 이어졌다. 그러나 전횡과 관영 모두 성격이 곧고 불같은 장수들이었다. 열흘이 지나자 더 참지 못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서(戰書)를 주고받은 뒤에 성벽과 진채에서 나와 박양 남쪽 들판에서 결판을 내기로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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