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TART]<5>정쟁유발 ‘흩어진 선거’ 조정하자

  • 입력 2005년 1월 5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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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러나 선거는 정치 제 세력이 ‘다걸기(올인)’를 하는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선거의 양면성 중 정쟁 격화와 국론 분열이라는 역기능을 억제하는 것은 우리 정치권의 오랜 숙제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총선-대통령 선거 등 전국 규모의 선거가 각기 다른 주기로 치러지는 바람에 빚어지는 ‘선거 과잉’ 현상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다행히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 총선은 불과 4개월여의 시차밖에 없다. 어느 때보다도 조정이 용이하다. 또 올해는 선거가 없다. 선거 주기 정리를 위한 논의의 물꼬를 트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다.

▽선거…선거…선거=1995년 이후 2004년까지의 10년 동안 선거가 없었던 해는 1999년, 2001년, 2003년 등 세 해에 불과했다. ‘참여정부’ 잔여임기 중에도 ‘지방선거(2006년)’ ‘대선(2007년)’ 등의 선거가 치러진다. 잦은 선거에 따른 고비용도 문제지만 선거를 치를 때마다 국론은 갈기갈기 찢겼다. 특히 대선의 경우 각 정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총력전을 펴게 된다. 선거를 통해 정쟁을 제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쟁을 상시화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도 정치권의 선거 올인을 부추기는 하나의 요인이다. 승자 독식의 법칙은 ‘대선 아니면 총선이라도, 총선 아니면 지방선거라도’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촉발시켜 민생 중심의 정책경쟁을 뒷전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각기 다른 주기로 치러지는 선거가 책임정치 구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대통령 선거 이후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대통령과 새로 구성되는 국회 간에 ‘불일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 선거를 의식해 집권여당이 개혁을 기피하거나 선심성 행정으로 흐르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숭실대 강원택(康元澤·정치학) 교수는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는 중간 평가적 속성을 갖기 때문에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소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정운영에 있어 권력 분점으로 인한 책임정치 구현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아닌 학계가 나서야=선거 주기의 조정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역대 정권이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거나 주로 개헌 논의를 위한 논거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정치권이 아닌 학계에서 문제 제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나라당 박세일(朴世逸) 의원은 “이 논의가 성공하기 위해선 정파적 시각을 떠난 전문가 집단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자칫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면 정략적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계에서 먼저 논의의 물꼬를 튼 뒤 국회에 이를 논의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해 여야가 함께 성과물을 만들어내자는 제언도 나왔다.

서울대 박찬욱(朴贊郁·정치학) 교수도 “임기 중간에 지방선거를 실시하면 중간선거의 효과가 있는 만큼 2007년이나 2008년에 대선과 총선을 한꺼번에 실시하고, 2년 후 지방선거를 하면 국정운영을 중간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헌법학회 행정학회 정치학회 등 학계에서 학문적 논의를 하면서 여론을 조성하고 이후 자연스럽게 정치권에 접목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선거 한번에 공식비용만 평균1858억▼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치른 전국 단위 규모의 선거는 모두 8차례. 이 선거에 들어간 돈은 무려 1조4669억 원으로 선거 한 번에 평균 1858억 원이 들어간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5일 밝힌 ‘전국 단위 선거비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통령 선거 2차례, 국회의원 선거 3차례, 전국 동시 지방선거 3차례를 치르면서 선거당 1000억∼3000여억 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음성적인 비용까지 고려할 경우 실제로 사용된 선거비용은 선관위 공식 집계의 3∼4배라는 게 선거를 직접 치러 본 정치권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선관위의 공식 집계로만 볼 경우 가장 돈이 적게 들어간 선거는 1996년 4월 15대 국회의원 선거로 1152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반면 2002년 6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3042억 원을 써 가장 비싼 선거로 기록됐다.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비용은 조금씩 늘어났다. 1997년 12월 15대 대통령선거에선 1235억 원이었던 선거비용이 2002년 12월 16대 대통령선거에선 1377억 원으로 증가했다. 국회의원 선거비용도 1996년 15대 1152억 원, 16대 1363억 원, 17대 2189억 원으로 급증했다.

선거비용이 해마다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 증가에 따른 선거관리 비용의 증가 때문이다. 관리 비용에는 △투개표 관리 비용 △선거제도 홍보 비용 △각종 홍보물 발송 비용 △단속 비용 등이 포함된다.

또 선거운동 방법이 확대된 것도 비용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다. 후보자의 방송 연설과 언론 홍보 광고 게재 횟수가 과거보다 늘어났고 인터넷 선거운동 등 새로운 운동 방법들이 등장해 후보자들이 지출하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선관위 조영식(曺永湜) 선거관리실장은 “매년 선거로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선진 선거문화 정착을 위한 ‘민주 경비’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대통령 5년 - 국회의원 4년’ 딜레마▼

선거 과잉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어느 누구도 선거제도 개선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을 꺼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통합을 위한 방편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나 내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개헌을 통한 권력체제의 전면적인 개편을 의미하는 만큼 인화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어떤 식으로든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 다수의 의견이다. 5년 단임제가 채택된 1987년 당시만 해도 정권 교체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당시 개헌 논의 과정에서 정권 교체에 따른 새 정부의 국정 운영 준비시간이나 정권 후반기의 레임덕현상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것저것 빼고 나면 한 정권이 국가를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데 5년은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국가 규모가 커지고 자유로운 정권 교체가 가능해진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관심을 끈 것이 4년 중임제다.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4년 중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려다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막판에 철회했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도 지난해 4월 4년 중임제에 대한 찬성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4년 중임제를 위해선 올해부터 개헌을 공론화하고 다음 대선이 시작되는 2007년 12월 전에 안(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없는데다 국회의원들의 잔여임기 포기 선언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을 한꺼번에 실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헌안의 부칙에 노 대통령의 임기를 18대 총선이 열리는 2008년 4월까지로 조정하거나, 다음 대통령과 18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한시적으로 제한한 뒤 대선과 총선 날짜를 같은 날로 정해 2011년 이후 4년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동시에 뽑을 수 있다.

그러나 4년 중임제가 한국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문제인 권력집중을 오히려 심화시킬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정치권의 내각제 논의는 권력 분산과 책임정치 구현을 주요 논거로 삼고 있다. 내각제 도입의 경우 2008년 4월 18대 총선 결과 다수당에서 총리를 임명하게 된다.

하지만 정치권과 학계에선 아직 개헌 논의에는 신중한 자세다. 고려대 법대 김선택(金善擇) 교수는 “현행 헌법 하에서도 효율적인 정치만 실현된다면 선거 과잉으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은 상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도움말 준 전문가(가나다순)▼

▽정치분야

강원택(숭실대 교수·정치학)

박세일(한나라당 의원)

박찬욱(서울대 교수·정치학)

유인태(열린우리당 의원)

조영식(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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