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TART]<4>한미동맹 새 비전 세우자

  • 입력 2005년 1월 4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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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개성공단 사업의 특수성을 미국이 이해해 주지 않으면 한국 내에 반미감정이 커질 것이다.”

지난해 봄 미국을 방문한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 사업에 다소 부정적이었던 미국 측을 사실상 압박한 셈이다.

미 국무부 관계자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는 후문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하는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노(NO)’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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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늦여름 두 사람은 워싱턴에서 다시 만났다. 몇 달 사이에 미 국무부 관계자의 한국 정부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7월 동남아 국가에 있던 탈북자 468명을 특별기 2대에 태워 한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정부를 다시 보게 됐다.”

대규모 탈북자 이송을 북한 정권에 대해 ‘노’라고 외친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한 것이었다. 하지만 탈북자 468명의 국내 입국은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북한의 거센 반발을 사 남북관계를 급랭시켰다.

동맹인 미국이 ‘예스’하면 동족인 북한은 ‘노’ 하고, 북한이 머리를 끄덕이면 미국은 고개를 가로 젓는 한국의 딜레마. 전문가들은 “올드 레프트(Old Left)의 ‘낭만적 민족공조론’도, 올드 라이트(Old Right)의 ‘냉전적 한미동맹론’ 모두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외교안보정책의 중심축인 한미동맹이 새로운 비전을 찾아 ‘새 출발(뉴 스타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왜 ‘새 비전’인가=‘미국은 한국에 자본 기술 시장 지식 안보의 5가지 이익을 주지만 중국이 주는 것은 시장과 생산기지뿐이다.’(삼성경제연구소 ‘한미관계의 현안과 과제’ 보고서)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 관계가 한국과 미국 사이 못지않게 긴밀해지고 있지만 그것이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이대우(李大雨)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과 일본 간의 동북아 지역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생존권을 위협 받지 않으려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가 강조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이런 유용성을 살려나가기에 현재의 틀은 너무 낡았다.

▽남북·한미 공조의 균형과 포괄적인 신뢰구축=본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KRC)가 지난해 12월 23, 24일 전국 성인남녀 1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념성향 여론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대북관계에서는 ‘조건 없는 경제지원’(51.3%)이란 진보적 응답이 ‘경제지원 반대’(26.2%)라는 보수적 응답보다 많았다. 그러나 대미관계에서는 ‘한미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45.4%)는 보수파가 ‘독자외교가 필요하다’(38.8%)는 진보파보다 많았던 것.

이처럼 중층적인 이념지도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새로운 비전을 구축해 이 특수성을 우리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면 내부의 이념 또는 세대 갈등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미동맹의 새 비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남북공조’에 대한 냉정하고 분명한 정의부터 앞서야 한다. 동용승(董龍昇) 삼성경제연구소 북한팀장은 “‘남북공조’ ‘민족공조’란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남북간의 신뢰가 쌓여 있는 것인지, 그 공조는 김정일(金正日) 정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인지를 면밀히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새로운 한미공조는 정부 간 공조뿐 아니라 두 나라 국민과 사회 전반의 공조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호열(柳浩烈) 고려대 교수는 “한미동맹이 군사정치 분야만이 아닌, 총체적인 양국간 신뢰 구축을 토대로 포괄적 동맹관계로 나아가는 것은 21세기 한국의 사활적 이해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밖’을 향한 하나의 목소리=지난해 중국 고구려사의 왜곡 실태 조사를 위해 여야 의원이 따로따로 중국을 방문한 것은 베이징(北京) 외교가에서는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됐다.

정재호(鄭在浩) 서울대 교수는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나뉘어 있는 데다 남쪽 내부마저 분열돼 있으면 ‘밖’에서 한국을 다루는 것은 아주 쉬운 게임이 된다”며 “2005년을 ‘합의된 대외전략 도출을 위한 해’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金聖翰) 교수는 “각계각층에서 한미동맹의 건강한 미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특히 ‘꼴통보수’와 ‘꼴통진보’만 불러내 접점은 없고 싸움만 있는 형태로 진행되는 일부 선정적 TV토론은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한미동맹의 새 비전을 마련하기 위한 첫 단계라는 것.

정 교수는 “전반적인 외교전략의 재점검을 위해 여야 의원 동수의 외교정책위원회나 여야가 동수로 추천하는 ‘현인(賢人)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

▼미군 철수땐 경제적으로도 마이너스▼

지난해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의 감축과 기지 재조정 문제를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내 진보와 보수세력은 한미동맹이 국익에 플러스가 되는지, 아니면 마이너스가 되는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일부 전문가들이 단편적으로나마 한미동맹의 ‘금전 손익계산서’를 만들어 보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기본적으로 군사동맹이다. 따라서 가장 큰 수익은 군사부분에서 얻는다. 국방부는 2000년 주한 미 2사단 1만4000여 명이 갖고 있는 군사장비의 가치를 45억7000여만 달러(약 4조7000억 원)로 추정했다. 2001년 초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열린우리당 조성태(趙成台) 의원은 최근 2사단뿐 아니라 미 7공군, 해군 및 해병대까지 포함한 주한미군 전체의 자산(병력+장비) 가치를 290억 달러(약 30조 원)로 평가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 전체 국방비의 1.66배 수준에 이른다.

주한미군이 감축돼도 자산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전력강화를 위해 향후 110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당 가격이 300억∼500억 원에 이르는 아파치 헬기 부대, 한반도 전쟁에 필요한 탄약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군 비축 탄약, 1개 포대(64발) 비용이 8000억 원 이상인 패트리엇 미사일,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미 인공위성과 U-2 정찰기 등도 공짜로 쓸 수 있다.

물론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규모도 크다. 서울 용산기지 이전 및 주한미군 기지 재조정을 위해 정부가 부담하는 금액은 4조∼5조 원.

일부 시민단체는 주한미군이 동북아 신속대응군으로 재편될 경우 한국이 겪을지 모르는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적 갈등도 비용 항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연간 10조∼13조 원에 이르는 대미 무역 흑자와 한반도 유사시 있을 수 있는 외국계 자금의 유출까지 손익계산서에 반영하면 한미동맹의 손익계산서는 ‘순이익’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세종연구소 이대우 연구위원은 “한미동맹은 손익 발생 기간을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잡느냐 따라 때로는 순손실이 생길 수도 있지만 장기적 안목에선 한국에 순이익을 주는 관계”라고 말했다.


최호원 기자 bestiger@donga.com

▼도움말 준 전문가(가나다순)▼

▽통일외교안보 분야

김성한(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동용승(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

유호열(고려대 교수·정치학)

이대우(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 연구위원)

정재호(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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