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논란…법률적 혼선 어디까지

  • 입력 2004년 6월 4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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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법원의 판결과 판단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병역거부가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병역기피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반박한다.》

▽실태=‘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가 3월 밝힌 보고서에 따르면 2월 현재 전국 교도소에 복역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521명이다.

연대회의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최초의 처벌 기록이 보고된 이래 지금까지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1만여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2002년 병역거부를 선언한 불교신자 오태양씨(30)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기 전까지만 해도 법원은 종교 교리를 내세운 병역거부에 대해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병역이 면제되는 1년6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해 왔다.

▽거부자 확산=오씨의 병역거부 선언 이전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여호와의 증인’ 교인들이었다.

그러나 오씨에 이어 2002년 유호근씨(28)가 ‘전쟁 반대와 평화 실현’이라는 비종교적 이유를 내세우며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새로운 ‘인권 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대학생 50여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고 대학생과 대학원생 17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공개선언’을 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 대학과 시민 사회단체로 급속히 확산됐다.

▽대체복무 논쟁=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의 핵심은 대체복무 인정 여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대를 가지 않는 대신에 군복무에 상응하는 기간을 사회봉사활동 등을 통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종교를 가장한 병역기피가 만연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이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 옹호론자인 이석태 변호사는 “현재의 군대생활에서 사병들이 겪는 어려움 이상으로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성격을 적절하게 입법화함으로써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병무청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체복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또 대체복무 기간이나 형태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전망=찬반양론이 접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헌법재판소와 국회에 해결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벌조항만 둔 현행 병역법이 헌법상 기본권인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와 배치될 수 있다며 2002년 1월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는 2001년 당시 민주당 장영달, 천정배 의원이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현 공익근무제도로 편입하되, 군사훈련과 예비군 편제 등을 면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체복무제를 추진한 적도 있었으나 입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국회사무처는 ‘17대 국회 입법과제’ 중 대체복무제 도입 등 전반적 병역제도 개편을 위한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새로운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大法 “병역거부사건 신속처리”▼

대법원은 4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일선 법원의 판결이 엇갈려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대법원에 계류 중인 2건의 사건을 최대한 신속히 처리해 법령 해석의 통일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손지호(孫志皓) 대법원 공보관은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에 따른 국민의 법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늦어도 6월 중순에는 대법원 계류 사건에 대한 심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조속한 시일 안에 결론을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손 공보관은 “대법원의 이 같은 처리 방침은 병역법 위반 사건에 대한 최종적 법률해석을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리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재 전국의 법원에 계류 중인 관련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심리가 중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서울서부지법 형사7단독 이준승(李埈承) 판사는 이날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위한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서모씨(25)에게 병역법 위반죄를 적용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병역 불이행의 근거로 내세운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병역법상 입영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제청이 돼 있고 최근 병역거부자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이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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