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동영/‘버려진 아이들’

  • 입력 2004년 5월 4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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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3일 오물이 나뒹구는 방에서 오랫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생활하던 어린 삼남매가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서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본보 4일자 A30면 보도).

이날 경찰과 함께 현장을 둘러본 기자는 여기저기 오물이 흩어진 가운데 파리가 들끓고 있는 모습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병원과 경기북부아동학대예방센터로 이송된 이들 삼남매의 부모를 수소문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4일 뒤늦게 소식을 듣고 아이들의 조부모가 찾아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손자(1)를 돌보고 있다.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첫째(4·여)와 둘째(3)는 지금도 “엄마 아빠가 가게에 갔는데 곧 올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다고 한다.

경찰과 센터측은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방치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방임’의 극단적인 경우라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아동복지법이 강화돼 아동을 학대할 경우 친권을 박탈하고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됐으나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는 ‘핏줄’로 이어진 부모 자식 관계를 법의 잣대로 갈라놓는 것은 무리라는 우리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동학대가 있으면 친부모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선 아동을 격리시키고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은 의료진 등 주변 인물에게까지 엄중한 책임을 묻는 선진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제 아동학대 문제를 ‘부모 잘못 만난 일부 아이들의 운명’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선 가정해체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과 함께 주변에서도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고 기뻐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선 어른의 무관심과 학대 속에 시들어 가는 어린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어린이날이 되었으면 싶다.

이동영 사회2부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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