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샤갈 제2의 고향 佛 생폴드방스

입력 2003-09-04 16:47수정 2009-10-1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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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한 빛이 감도는 생폴드방스의 골목 풍경.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이 거리엔 샤갈의 작품 속 풍경이 남아 있다. 이 골목을 곧장 가면 샤갈 미술관이 나온다. 사진제공 캠프스튜디오

“내 사랑하는 마을 비테브스크. 너를 마지막 보고, 울타리 쳐진 너의 거리에서 나를 발견한 후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너를 사랑하면서 왜 여러 해 동안 너를 떠나 있었는지…. 나는 이제 너와 살지 않지만 너의 즐거움과 슬픔이 반영되지 않은 내 그림은 단 하나도 없어. 지난 세월 동안 나는 한 가지 사라지지 않는 걱정이 있어. 내 고향이 나를 이해할까.”

초현실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이 만년에 뉴욕의 한 신문에 기고한 편지글이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의 배경인 러시아 비테브스크(지금의 벨로루시 소재)는 샤갈이 아니었더라면 그 존재조차 희미했을 곳이다.

평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았던 샤갈은 동향 출신인 첫 번째 부인, 벨라의 죽음 이후 더욱 깊은 연정을 드러내곤 했다. 이 같은 고향에 대한 사랑은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엿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그곳에는 그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예술의 세계, 프랑스

샤갈이 가장 긴 세월을 보낸 곳은 프랑스였다. 23세의 청년 샤갈은 보지라르 거리의 예술가 거주지역인 ‘라 뤼슈’에 자리잡았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페르낭 레제를 배출해낸 유명한 아틀리에인 라 뤼슈 주변엔 언제나 블레스 상드라르, 기욤 아폴리네르같은 전위예술가와 화가인 카임 수틴, 로베르 들로네 등이 있었다.

이런 인연은 그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나와 마을’ ‘시인’ 등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1911년 앙데팡당전(展)과 베를린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을 끝내고 그는 비로소 고향을 다시 방문한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맞게 되자 러시아에서 8년간 머물러야 했다.

유럽에서의 명성 덕분에 모스크바 문화부의 요직을 맡게 됐지만 그는 늘 고향을 그리워 했다. 비테브스크 미술학교교장으로 재직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다시 파리로 돌아온 것은 3년 뒤. 이 기간에 여러 전시회에 참여했고 프랑스 각지와 이집트 팔레스타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을 여행했다. 1931년에 출간한 샤갈의 전기 ‘나의 생애(Ma Vie)’와 바젤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1933)엔 그런 경험들이 풍부한 색감으로 표현됐다.

유대인인 그는 1941년 나치의 박해 때문에 미국 망명길로 내몰린다. 그러나 다시 7년 후 프랑스로 돌아와 생폴드방스로 정착, 마지막 생을 보내게 되었다. ‘변형(metamorphosis)의 서정시인’이란 별칭은 이처럼 주유하듯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더 넓어지고 넉넉해진 샤갈의 프리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샤갈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변형해놓은 예술작품들은 지금도 그가 다닌 도시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샤갈의 무덤이 있는 생폴드방스의 묘지. 러시아 출신의 화가가 오랜 여정을 마치고 잠든 곳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었다.사진제공 캠프스튜디오

●샤갈이 남긴 흔적들

파리의 라파이에트와 프렝탕같은 대형 백화점이 밀집한 오스망 거리로 들어가면 초입에 자리한 오페라 극장을 만나게 된다. 이 극장은 샤갈이 1964년 샤를 드골과 앙드레 말로의 요청으로 천장을 장식하였다. 77세의 고령에 완성한 이 작품에는 음악과 사랑, 파리에 대한 열정이 그려져 있다.

그는 220m²나 되는 천장에 유채로 그렸는데 당시 프랑스 정부는 샤갈을 위해 고블랭 태피스트리 공장의 작업실을 내주었고, 당대 최고의 석판화 분야의 거장이었던 샤론 솔거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천장화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위해 그린 두 개의 거대한 벽화와 함께 샤갈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페라 극장은 유명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14년간의 작업 끝에 1875년 완성한 건물. 현재는 발레 전문 공연극장으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니스에서 종려나무 가로수 길이 이어진 시미에 대로에 접어들면 모던한 스타일의 단층건물이 나타난다. 샤갈 미술관이다.

샤갈은 63세부터 정착했던 생폴드방스에 미술관을 세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마땅한 부지도 없고 시 당국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결국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인근 도시 니스에 미술관을 세울 수 있었다.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생폴드방스는 프로방스 지역의 다른 마을들처럼 언덕 꼭대기에 새의 둥지 모양으로 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미로처럼 꼬불꼬불 이어지는 좁은 길 양쪽으로 16세기에 지은 오래된 집들이 늘어서 있어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잠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도시 중심엔 12세기경에 지어진 생폴 교회가 있고 서북쪽으로는 마그 재단 미술관이 있다. 샤갈을 비롯, 미로, 마티스, 콜더 등의 현대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마을의 입구에는 이곳에 머물렀던 수많은 미술가와 작가들이 애용했던 콜롱브 도르 여인숙이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그랑드 거리(rue Grande)를 중심으로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든 마을을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할 만큼 작지만 그 유명세는 대단하다.

샤갈을 비롯한 유명한 미술가들이 살았고 스케치로 그 흔적들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미술과 책의 도시로도 알려져 우리나라 파주에 건설 중인 헤이리 마을의 모델이기도 하다.

성서를 테마로 한 샤갈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성서미술관 내부 전경.사진제공 캠프스튜디오

●나스에 있는 샤갈미술관

프랑스에서 샤갈의 작품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은 니스에 있는 마르크 샤갈 성서미술관이다. 올해로 개관 20년을 맞은 이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 중 성서를 테마로 한 것들만 모아 전시해 놓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10여년에 걸쳐 제작한 이 그림들은 처음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들이다.

샤갈은 이 미술관을 위해 직접 스테인드글라스(푸른 장미) 창을 제작했다. 미술관의 소장품은 1966년 샤갈과 그의 아내 발렌티나가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17점의 작품이 중심이 됐다.

노아의 방주, 야곱과 천사의 대결, 인간의 창조, 홍해의 기적 등 성서의 몇몇 상황들이 영화처럼 화폭에 옮겨져 있고 대부분 대형 캔버스를 이용해 박진감이 넘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내용을 샤갈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해놓은 작품 일색이다.

유화작품뿐만 아니라 대형 모자이크, 석판화, 조각작품 등 다양한 기법을 함께 만날 수 있지만 메시지는 오직 하나, ‘신의 영광과 평화’이다. 샤갈의 마지막 작품전인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전(1984)’도 이곳에서 열렸다.

미술관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아 한가롭게 그림을 감상하기에 좋다. 작품도 성서의 순서와 무관하게 전시되어 비교적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전시공간 외에도 콘서트홀과 야외수영장, 도서관이 딸려 있어 니스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미술관 입구에 마련된 기념품점에선 샤갈의 그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소품과 엽서, 액세서리, 화집 등을 구입할 수 있고 샤갈에 관한 거의 모든 도서가 전시, 판매되고 있다. 샤갈 미술의 개론서라 할 수 있는 ‘ABC de Chagall’이 가장 인기 있는 서적이다.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도 둘러 볼만하다. 이 카페는 4∼10월에만 문을 연다.

●98세에 끝낸 스테인드글라스

샤갈의 흔적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독일의 마인츠까지 연결된다.

마인츠는 20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도시로 라인강과 마인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활판인쇄를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태어난 곳으로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도 있다.

이곳엔 또 하나의 명소, 성 슈테판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990년 마인츠의 대주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재상인 빌리기스에 의해 지어진 건물. 외관상 평범해 보이는 이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색다른 분위기가 방문객을 맞는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신비롭게 나눠주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 때문이다. 바로 샤갈의 작품이다.

문에 나 있는 작은 십자가 창문으로부터 파란 빛이 새어드는 교회 내부는 맑은 날이면 온통 푸른 빛으로 실내가 채워질 정도이다. 이 교회 목사였던 카를 클라우스는 건물 보수를 계획하면서 샤갈에게 긴 편지를 썼다. 독일과 프랑스의 우호 증진,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연대를 위해 이 교회에 창문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있다.

샤갈은 곧 작업에 들어갔고 1978년 처음으로 채색유리를 장식했다. 그때 샤갈의 나이 91세. 7년 후 스테인드글라스를 모두 완성했고 그 공로로 마인츠의 명예시민이 됐다. 그때까지 샤갈은 마인츠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클라우스 목사는 “샤갈이야말로 색채의 명인이자 성서의 사신”이라고 평가했다. 샤갈의 색채가 삶의 희망,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것.

늘 새로운 기법과 시도로 ‘변형’을 즐겨하던 샤갈에겐 스테인드글라스는 새로운 오브제였다. 그는 자신의 프리즘으로 세속적인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을 상징적으로 분리시켰고 나아가 그 벽을 허무는 예술세계를 보여줬다. 차가운 건축물에조차 따뜻한 인성과 신성을 깃들게 할 수 있음은 신이 그에게 부여한 특별한 재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프랑스까지는 에어프랑스(02-3788-0404)와 대한항공(02-2656-2000)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11시간 55분.

2. 미술관 & 교회 관람 정보

마르끄 샤갈 성서미술관은 해마다 여름시즌(7월 1일-9월 30일)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하고 겨울시즌엔 오후 5시까지. 화요일이 휴관일이다. (www.ac-nice.fr/chagall/chagall.htm) 마그재단 미술관(www.fondation-maeght.com)은 7월1일부터 10월 30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관한다. 성 슈테판 교회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개관하고 낮 12시부터 오후2시까지는 점심시간이다.

3. 여행정보

생폴드방스에 관한 여행정보는 지역관광청(www.ville-vence.fr)에서, 프랑스여행에 관한 일반정보는 프랑스 정부 관광성 (02-773-9142 /www.franceguide.or.kr), 독일 여행정보는 독일관광청(www.germany-tourism.de/)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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