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볼보 XC90

  • 입력 2003년 6월 9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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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부터 얘기해 보자, 처음 볼보를 만났던. 고등학생 시절 기자가 다니던 학교 정문 앞엔 늘 외제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선이 뚜렷한 차체에 남성을 상징하는 마크(♂)를 배경으로 ‘Volvo’라는 로고가 붙어 있었다.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지만 그 또래 소년들에게 자동차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성년의 상징물이었다. 기자에게 볼보는 실물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던 최초의 외제 승용차였다. 그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느낌이란…. 권위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을 갖고 있던 시절이지만 볼보가 가진 남성성은 그 반감을 누그러뜨리고도 남을 정도로 강렬했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 시승한 XC90은 올해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Sports Utility Vehicle). 국내에서도 수입차 모터쇼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공식 판매 전부터 관심이 집중된 모델이다. 볼보의 최고급 라인인 S80과 플랫폼(차대)을 같이 쓴다. S80 시리즈부터 유선형 디자인이 가미되면서 볼보의 전통적인 남성적 이미지가 다소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XC90의 첫인상은 북유럽의 사내를 보는 것처럼 무뚝뚝했다.

시동을 걸자 역시나 ‘부르릉’ 하고 힘이 실린 묵직한 저음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조금씩 그를 알게 되면서 숨어 있던 편안함이 드러났다. 스티어링 휠은 손가락 하나로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운전석 패널에 붙은 장치들은 꼭 필요한 곳에 있었다. 첫 출발은 다소 굼뜬 것 같더니만 일단 한 번 탄력이 붙자 가속 성능이 탁월했다. 고속도로에서 추월을 하면서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튀어 나갔다. 오프로드에 어울리는 SUV가 아닌 것 같았다. 가슴이 뛰었다. 뛰어난 기동성으로 유럽 일대를 주름잡던 바이킹이라도 된 듯했다. 계기반에 적힌 속도 한계는 시속 260km. 그 절반의 속도만 내도 불법이라는 현실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1927년 창업 이후 볼보는 늘 ‘안전’을 강조해 왔다. 다른 자동차 브랜드가 ‘운전하는 맛’이나 ‘우월감’ 등을 강조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7인승인 XC90은 운전하는 맛을 즐기기에도, 가족을 위한 패밀리 카로도 손색이 없는 모델로 보였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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