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고병철/‘北 핵포기-美 평화보장’ 약속하라

  • 입력 2003년 2월 20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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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동아일보와 스탠퍼드대 공동주최로 열린 국제포럼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이 포럼의 특징은 한반도 주변 5개국 전문가들이 모여 한미관계와 북-미관계의 현황을 점검하고 정책분석과 정책제안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사회, 논문발표, 토론, 주제강연의 역할을 맡은 참석자가 24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실무경험자가 과반수였다는 것도 특기할 만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을 지낸 참석자가 4명, 그리고 현직 국회의원도 1명이 왔다. 미국에서는 국방장관, 국무차관, 국무차관보, 대사, 주한미군총사령관을 지낸 사람들이 참석했다.

▼동북아 ‘핵확산 도미노’ 우려▼

회의에서 공식 비공식으로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해 보면 우선 50주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약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근본적으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간의 조율과 공조상태가 양쪽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보다 훨씬 더 나빴던 것 같다. 1999년 3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은 아시아담당 관리들이 의회의 인준을 못 받았고 한반도에 관한 정책의 윤곽이 정립되기 이전에 진행된 시기상조의 해프닝이었고 부시 대통령의 대북 불신만 노출시킨 실패작이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가졌다. 이것은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정부 간의 불신은 계속되고 있으며 다음주에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제2의 북한 핵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안도 잠재적으로 또는 사실상 한미공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라크 사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위협을 아직 위기로 규정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위협을 최소화하려는 증후까지 보이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면서도 북한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쌍무적 대화는 ‘불법행위를 보상’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로 다자간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국방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페리 전 북한정책조정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쟁억지력을 줄이고 △동북아에서 핵확산 도미노현상(한국 일본 대만의 핵개발)을 유도하며 △세계의 핵 비확산체제를 약화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불량국가 또는 테러집단에 수출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가장 시급한 것은 북한이 영변에서 8000개의 사용 후 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것과 5MW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전자는 핵무기 5개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 추출을 가능케 하고 후자는 매년 그 몇 배의 핵무기 제조능력을 북한에 부여하는 것이 된다.

북한의 본심이 핵무기 개발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협상카드로 사용할 의도인지를 시험하는 방법은 대화밖에 없다는 것이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차관보의 주장이고 페리 전 장관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쌍무적 대화를 하되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장치를 원상복구하고 사찰관의 주재를 허용하며 폐연료봉 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또 미국은 영변을 공격하지 않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허가를 얻어내려 하지도 않겠다는 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의 목표는 검증받을 수 있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미국의 불가침 보장 및 에너지 식량 원조를 사실상 맞바꾸는 것이다.

북한이 다자협상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쌍무적 대화만이 실현 가능성이 있으며 유엔 안보리는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킬 확률이 낮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장성명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쌍무적 대화만이 사태 해결▼

이 같은 협상시나리오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평화가 아닌 다른 대안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북한이 인식해야 하고 한반도 주변국들도 북한이 받을 불이익을 북한에 충분히 알려야 한다.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이미 “모든 대안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정지시켜 미사일 등 무기수출을 방지하고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대북 송금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한 경제제재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는 신빙성이 낮은 듯하다.

북한 핵위기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포럼 참석자들은 공감했다. 무력행사는 제2의 6·25전쟁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니 받아들일 수 없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필자약력▼

현 미국 일리노이대 명예교수로 미국 일리노이대 명예교수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다. ‘북한의 외교정책’(영문) ‘남북한의 외교정책체제’(영문) 등의 저서가 있다.

고병철 미국 일리노이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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