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우궈광/중국도 겨냥한 ‘北의 核도박’

  • 입력 2003년 2월 1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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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위기를 둘러싼 중국의 외교 행보가 자못 독특하다. 미국은 조급하다 못해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도 동아시아 지역에 병력을 증강해 평양에 외교, 군사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본도 위기 해결을 위한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급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특별한 외교적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사실 문제는 베이징의 평양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이는 중국 외교관들도 사석에서 인정하는 바다. 평양이 불러일으킨 이번 핵 위기는 미국만을 대상으로 한 외교적 모험이 아니라 중국을 상대로 한 위협 행동이기도 하다.

베이징과 평양간의 이른바 형제 관계는 오래전부터 중대한 갈등 조짐을 보여왔다. 지난해부터 베이징에서는 탈북 난민들이 외국기구에 진입하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베이징은 비록 평양의 입장을 고려했지만 난민들을 북한으로 송환하지 않아 평양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양빈사건’으로 갈등 드러나▼

지난해 마지막 몇 개월 동안 동북아 정세 변화는 대단히 빨랐다. 먼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러시아에 갔고 9월 중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다. 또 남북 관계가 해빙 국면(예를 들어 철도 연결사업 재개)에 접어들었으며, 미국도 고위특사를 북한에 보냈다. 그러나 유독 베이징과 평양간은 조용했고 아무런 왕래가 없었다. 본래 9월 북한 정부 수립일은 양측이 관계를 돈독히 하는 기회였고 베이징은 늘 고위급 대표단을 평양에 보냈다. 그러나 지난해 9월에는 이 같은 관례가 이어지지 않았다.

베이징과 평양간의 조용한 관계를 깬 것은 ‘양빈 사건’이었다. 북한은 중국 접경지역의 신의주에 경제특구 설립을 선포하고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양빈을 특구 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얼마 뒤 양빈은 중국 공안에 구속됐다. 이는 평양의 체면을 심대히 손상시킨 사건이었다. 베이징은 왜 그랬을까. 중국은 역대로 ‘외교는 작은 일이 없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양빈과 특구사건은 북-중 관계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양국 갈등 관계의 산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베이징과 평양이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평양이 주도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외교가에는 김 위원장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월 정례 브리핑에서 이를 공식 부인했다. 외교에서 해롭지 않은 소문은 일반적으로 모호한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심상치 않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평양이 어떤 속박을 받지 않고 현재의 핵 위기를 만든 것은 이 같은 북-중 관계의 배경 아래에서 일어난 것이다. 물론 북-미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는 모두가 아는 바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통상 여론이 소홀히 다루는 다른 측면이다. 평양이 핵 위기를 조성한 것은 실상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핵 위기 이전에 베이징과 평양간에 도대체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간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이며 김 위원장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핵 위기는 평양의 베이징에 대한 흥정 능력을 강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평양은 베이징에 대국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요구할 것이다. 또 베이징이 워싱턴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면 먼저 평양에 도움을 달라고 할 것이다. 만약 중국이 평양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중국은 중-미 관계, 주변 안보, 대국으로서의 이미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등 여러 측면에서 손상을 입을 것이다.

▼北, 中의 외교적 양보 원해▼

이를 원치 않는다면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베이징이 평양의 요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또 평양이 먼저 베이징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할 것이 아니라 베이징이 평양에 양보해야 함을 의미한다. 평양이 베이징도 협박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평양이 요구하는 조건이 과도할 것이고 베이징에는 평양을 다룰 지렛대가 없다는 점이다. 또 베이징의 지도층이 교체된 것은 중국 외교정책 결정 효율을 낮추고 있으며, 이 문제가 중국 지도부의 권력 투쟁을 일으키는 단서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베이징은 아직도 북한이 미국과의 갈등을 계속하는 것을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북-중간의 교착 국면은 일정 기간 계속될 것이다.

우궈광 홍콩 중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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