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준의 재팬무비]<으랏차차 스모부>스모에 대한 상념

입력 2001-03-02 18:57수정 2009-09-21 04:2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비디오로 <으랏차차 스모부>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화로는 지난해에 봤는데 개인적으로 일본 씨름인 스모(相撲)를 우리 민속 씨름 만큼 좋아하기 때문에 수오 마사유키의 출세작이라는 이 영화에 대해 영화 보기 전부터 기대가 대단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지 영화를 다 보고 일어서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어찌됐건 좋아하는 소재를 다룬 영화라 덮어놓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경기 규칙만 놓고 본다면 스모는 그리 특별한 게임이 아닙니다. 상대를 쓰러트리거나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면 승리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투기(鬪技)와 별 다를 게 없습니다. 경기 규칙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샅바를 붙잡고 힘과 기를 겨루는 우리 씨름이 더 독특하겠지요. 하지만 스모는 일본 사람들이 경기 규칙 위로 '세월의 무게'를 얹는 슬기를 발휘한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기가 되었습니다. 보름 동안 진행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 진행 방식, 일본 스모만의 독특한 계급제, 스모를 둘러싼 온갖 흥미로운 전통 등이 바로 '세월의 무게'입니다.

스모 시합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를 돌아가며 1년에 여섯 번 열리는데 시합이 한번 열렸다 하면 보름 동안 진행됩니다. '마쿠노우치(幕の內)'라 불리는 1군에 소속한 씨름꾼들이 하루에 한 번씩 모두 15번을 싸워 전적이 제일 좋은 사람이 우승하게 되지요. 우리 민속 씨름이 토너먼트 방식인데 비해 일본 스모는 리그 방식인 셈입니다. 이런 경기 진행 방식 때문에 '센슈라쿠(千秋樂)'라고 부르는 마지막 15일째 날에 우승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 이겨나가야 우승할 수 있는 토너먼트 방식에 비해 박진감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대진표를 교묘하게 짜기 때문에 전적 좋은 선수들이 맞붙게 되는 대회 막바지에는 대단한 스릴을 맛볼 수 있습니다.

리키시(力士)라고 부르는 스모 선수들에게는 알다시피 일정한 계급이 부여됩니다. 마쿠노우치에 속한 리키시들은 성적에 따라 요코즈나(橫網), 오제키(大關), 세키와케(關脇), 고무스비(小結), 마에가시라(前頭) 등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다른 계급들은 성적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가장 높은 계급인 요코즈나는 결코 계급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은퇴할 뿐이지요. 최고 계급인 만큼 대우도 각별합니다. 먼저 요코즈나가 되면 도효(土俵)라 부르는 씨름판에 입장할 때 허리에 그물 장식을 찰 수 있습니다. 이 그물 장식이 바로 요코즈나(橫網)인 겁니다. 물론 월급이나 다른 모든 대접도 다른 계급과는 천양지차지요. 그래서 리키시들은 모두들 요코즈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치요노후지(千代の富士)라는 리키시를 좋아합니다. 몸집은 작은 편이었지만 우와테나게(上手投げ)라는 던지기 기술을 신출귀몰하게 구사해서 몸이 배나 큰 리키시들을 날려버리곤 했지요. 얼마나 많이 이겼든지 사상 초유로 1천 승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년에 대회를 여섯 번, 경기를 90번 하는 것을 생각하면 1천 승은 가히 난공불락의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11년 동안 내리 이기기만 해야 겨우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니까요.

기리시마(霧島)라는 선수도 좋아합니다. 요코즈나에는 이르지 못하고 결국 오제키에서 은퇴하고 말았지만 스모 스타일이 정말 깨끗했습니다. 밀려나가면 패배하게 되는 씨름판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서 이른바 '웃차리'라는 절대절명의 기술로 몸무게가 200킬로그램이 넘는 구시마우미(久島海)를 번쩍 들어서 도리어 경계선 밖으로 내던져 버리는 광경을 볼 때에는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몸 어디에서 그런 역발산의 힘이 솟는지 정말 대단했습니다. 게다가 이름마저 '안개의 섬'이니 멋지지 않습니까. 덧붙이자면 웃차리라는 기술은 패배 일보 직전에 경기를 역전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씨름의 뒤집기와 비슷합니다. 다만 기술보다는 순간적인 힘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힘과 기술이 고루 뒷받침돼야 하는 뒤집기와 약간 다르지요.

위성 방송으로 스모 경기를 볼 때마다 우리 민속 씨름을 생각하게 됩니다. 프로 경기가 된 뒤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요. 그때마다 그 많던 씨름 팬들이 하나둘씩 떨어져나가 지금은 경기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태현, 김경수, 김영현 같은 천하장사급 선수들이 분투하지만 박진감은 예전같지 않습니다. 이만기, 이준희, 강호동이 주름잡던 옛날이 그립기만 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어찌 됐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서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인기를 되찾았으면 합니다.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660905@hanmail.net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