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엄마의 와우! 유럽체험]취리히에 차가 없는 이유

  • 입력 2000년 9월 29일 10시 48분


전국이 휘발유 값 인상으로 몸살인데도, 전국이 차차차. 지난 일요일에는 짐 나른다고 차 몰고 나갔다가 결국 명동의 극장간판만 한시간 쳐다보다 왔습니다. 분명 땅 밑에는 지하철, 땅위에는 버스가 건재하는데, 전국민이 이토록 차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지... 물론 당장의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뜨거운 맛을 봤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도로 1차선에서 문 열어주면서 점프할 것을 종용하는 버스 운전사 아저씨. 알아서 뛰어 내리라는데, 자동차에 깔리지 않을 책임도 100% 우리 몫이라죠. 집에 가는 길에 마티스 타보려고 애꿎은 복권 긁는 기분,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그럴 때면 교통천국 스위스 취리히가 생각나곤 하죠. 처음 도착해서 차 살까 말까 고민할 때, 정작 스위스 인들이 말리더군요. 국제도시, 금융도시, 동서남북 도로망의 심장인 취리히에서 차 없이 산다는 게 좀 이상하시죠? 설명인 즉,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도 일단 시내 진입구에 들어서면 무조건 차를 버린답니다. "Park and Ride" 구역에 세워두고 도심으로는 가뿐하게 전차나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거예요.

내차보다 대중교통이 나은 이유는, 첫째. 비싼 만큼 제 값을 한다는 점. 거미줄처럼 복잡한 노선망도 놀랍지만, 버스와 전차, 기차가 간발의 차이로 연결되거든요. 예를 들면 30분에 기차가 중앙역에 도착, 쇼핑거리인 반호프슈트라세 방향 전차는 35분 도착. 반호프슈트라세에서 벨뷰행 전차가 40분 도착하는 식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이가 딱딱 맞는지 정말 시계 만드는 나라다 싶죠. 여행을 할 때도 내가 무슨 요일, 몇 시쯤에 알프스의 산간마을로 가고 싶다고 말만 하면, 기차, 버스, 케이블카, 배의 연결시간을 컴퓨터로 뽑아주거든요.

둘째. 주차공간은 찾기도 힘들지만, 엄청나게 비쌉니다. 일찌감치 환경문제에 눈을 뜬 나라니까 정책적으로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에 환경부담금을 매기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대기오염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셈이죠.

맘대로 버스, 전차 골고루 이용하는 1일권이 우리 돈으로 6000원.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에요. 오래 체류하는 사람들은 한달 패스를 끊는 것이 좋아요. 저도 모나스카르테라는 정기권을 끊었는데, 오전 9시 이후 이용한다는 조건으로 더 싸게 샀어요.

전차를 탈 때는 전차 문 앞의 빨간 단추를 눌러야만 문이 열려요. 에너지 절약의 일면이죠. 절약은 좋은데 35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에어컨 없는 전차를 타는 일은 정말 고역입니다. 스위스식 국민건강증진법이 냉방장치를 금지하고 있다나요. 그래서 여름철 관광객들은 정어리 통조림처럼 붙어 앉아 더위와 싸워야 합니다. 특히 냉방천국 북미에서 온 관광객들은 말 걸면 싸울 듯한 기세로 앉아 있더군요.

티켓은 기계에 넣지 않아도 되지만, 간혹 전차에 검표원이 올라타니까 몸에는 지니고 있어야겠죠. "앗, 집에 두고 왔네" 운운하면 검표원은 그냥 웃기만 해요. 전세계에서 몰려든 배낭여행객이 똑같은 이야기를 한대요. 검표원 아저씨들의 원칙은 하나입니다. "듣긴 하는데, 믿진 않아"!

저기 전철 문에 붙어있는 문구 보이세요? "무임승차 대신 자전거를 빌립시다." 아하. 한푼이 아쉬운 배낭객들에게는 그 방법이 있군요. 취리히에 오신다면 꼭 자전거를 타보세요. 자전거길 지도 뿐 아니라, 관광청, 백화점, 철도국에서 자전거도 무료로 빌려줘요. 혼자 타는 자전거, 둘이 타는 자전거, 누워 타는 자전거, 애 하나 태우는 자전거, 둘 태우는 자전거, 장애인용 자전거 등등... 헬멧까지 모조리 빌려주니까 달랑 신분증 하나만 가져가면 됩니다. 글로부스라는 큰 백화점에서도 빌려 준대요.

대중교통 서비스는 애프터서비스도 철저해요. 축제 같은 경우는 새벽 1시 30분까지 연장, 증편 운행합니다. 게다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은 온 시민들이 먹고 마시고, 춤추러 몰려나오니까 새벽 2시까지 운행하죠. 교통편 걱정 말고 재충전하면서 결혼이나 출산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자애로운 배려인 모양입니다.

유모차 끌고 전차로 돌아다니려니까, 저도 서서히 요령이 생기더라구요. 전차를 올라타려면 계단이 세개 있거든요. 애를 유모차에 앉힌 채로 쉽게 올라타는 방법이 있어요. 우선 문이 열리면 유모차를 들어 두 번째 계단에 뒷바퀴를 걸쳐놓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몸체는 쉽게 위로 올려지거든요. 내릴 때는 반대로 먼저 내려가서 유모차를 거꾸로 들어 내리는 거죠. 취리히 아줌마가 가르쳐준 방법이에요.

유모차는 유모차 그림이 그려진 칸에만 탈 수 있어요. 맨 처음에는 모르고 그냥 전차 중간 칸에 올라탔거든요. 그랬더니 전차가 좌회전하는 순간 차량 연결부위가 갑자기 곡선으로 휘어지면서 발 밑이 흔들흔들 요동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유모차 여행객은 꼭 알아두세요. 유모차는 무조건, 맨 뒤!

기저귀 차고 유모차에서 발버둥치는 나우랑 외국 생활하는 것,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도 저도 힘들 때 나우 엄마는 그냥 싱긋 웃었지요. 왜 사냐고 묻거든 웃으라고 했으니까요...그리고, 언제나 환한 미소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스위스 사람들이 넘치도록 제 곁에 있었으니까요.

<나우 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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