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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 긴급점검④]『사람이 경쟁력』 고용체계 세워야

입력 1998-09-30 19:57업데이트 2009-09-2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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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의 조명기기 업체인 S사. 사장실에 들어서면 벽에 걸려 있는 과학기술부의 신기술 인정서, 독일과 스위스 정부가 발급한 안전 마크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회사 형편을 설명하는 사장의 목소리엔 근심이 잔뜩 묻어 있다.

“요새 일손이 달려서 고민입니다. 수출 주문은 늘어나는데 당장 기계를 돌릴 숙련공이 없으니….”

웬 ‘행복한 고민’인가 싶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작년말까지 40명이었던 직원수가 지금은 겨우 20명. 수년간 납품해온 기아자동차가 작년 부도를 내자 덩달아 부도를 맞은 이 회사는 인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후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결과 일본 독일 등으로부터 상당한 물량을 주문받을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인력 부족 사태를 맞은 것.

“사람을 더 모집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르는 소리 말아요. 일감이 또 언제 줄지 모르는데 함부로 채용했다가 어떻게 뒷감당을 하라고요.”

물량을 예측 못하니 인력을 늘렸다간 나중에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얘기였다.

경기 안산 시화공단 M사도 형편이 비슷하다. 중장비 차량 부품을 제작하는 이 회사는 작년 50명 가량 되던 직원이 올들어 40명선으로 줄어들었다.

지난달부터 물량이 늘고 있지만 역시 ‘언제 일감이 끊길지 몰라’ 인력 채용을 엄두도 못내고 있다. 현상유지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기술 개발은 아예 제쳐 놓은 상태.

‘구직난 속의 인력난’을 겪고 있는 S사나 M사의 사정은 우리 기업의 인력시스템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는데 생산현장에선 이들이 필요해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이른바 ‘풍요속의 빈곤’인 셈.

기업은 이제 사람이 필요해도 좀처럼 뽑지 않는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극히 불안한 상황이라 섣불리 인력을 채용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인력채용 중단은 단지 실업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 젊고 새로운 인력을 지속적으로 ‘수혈해’ 훈련을 거쳐 핵심 인력으로 키우는 시스템으로 가동돼왔다. 신규 인력을 안 쓴다는 것은 이같은 인력의 ‘신진대사’순환이 아예 끊겨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기업의 유기체적 특성이 소멸될수 밖에 없다.

광주 하남공단의 한 전자 부품 업체는 작년 8월 이후로 사람을 단 한명도 뽑아본 적이 없다. 김모사장은 “새로운 사람이들어와야새로운아이디어와 발상이 나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불안정한 고용 상황은 생산현장의 노동생산성에 치명적이다. 일자리를 용케 유지하고 있더라도 ‘반실업’ 상태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아 정상적인 생산 시스템 작동이 안된다.

경기 시화 반월공단의 경우 입주업체중 30∼40%가 개점 휴업상태. 일감이 있을 때만 출근해 하루 일하고 일당을 받는, 직장인이라기보다는 ‘아르바이트형’이다. 일주일 일하고 일주일 쉬는 격주 근무형도 상당수인 형편에서 장기적인 생산계획을 짠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얘기일 뿐이다. 손끝에 숙련된 생산기술이 현장에서 발휘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실직자를 구제하겠다고 내놓은 정부의 실업대책은 생산 현장에서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울산 온산공단 내 자동차 부품업체인 D사. 적정 인원이 1백명인 공장에는 현재 60명만이 일한다. 올초 부도를 낸 이후 공장 가동을 못하면서 40명을 감원했다.요즘엔 주문량이 늘어 일용직 인력을 모집하지만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일용직은 한달에 70만원 가량 주는데 전화로 월급을 물어보고는 ‘겨우 그것 받을 바에야 차라리 실업급여 타는 게 낫다’며 끊어버리는 사람이 많아요”

D사측은 “실업급여를 3D업종의 고용보조금으로 돌리면 실업대책도 되고 생산현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안양〓이명재·김종래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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