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 배구팀 이경석감독(40). 지금은 1백㎏이 넘는 거구지만 고려증권에 있을 땐 날렵한 몸놀림과 환상의 토스로 ‘최고의 세터’로 이름깨나 날렸었다.
보기만 해도 느긋함이 몸에서 저절로 배어나온다. 그러나 이런 이감독도 학창 시절의 한가지 기억을 떠올릴 때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학창 시절(부산동성고―경기대)‘여자팬티 구매 담당자’였던 것이 바로 그것.
당시만 해도 유니폼 팬츠가 요즘처럼 최첨단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헐렁하기 짝이 없었다. 이 때문에 코트에서 마구 몸을 굴려야 하는 배구 선수들은 몸에 찰싹 달라붙는 여자팬티를 안에 입은 뒤 그 위에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 게 보통이었다. 문제는 과연 누가 그것을 다량으로 구입해 오느냐는 것. 결국 한사람이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
키가 장승처럼 큰 이감독이 여자팬티 판매점 앞에서 슬쩍 눈치를 보다 도망치듯 팬티를 사가지고 나오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감독은 “내가 아마도 여자팬티를 입어본 경험이 있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 국내 스포츠용품 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최근에는 얇은 천으로 ‘중요한 곳’을 완벽하게 감쌀 수 있는 최첨단의 유니폼 팬츠가 사용되고 있다.
요즘 남자배구선수들은 아예 여자팬티 판매점을 기웃거릴 일이 없어진 셈.
〈권순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