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된 ‘매연 원격측정장비’
장비 하나로 하루 2500대 측정 가능, 기존엔 1명이 10대 안팎 단속 고작
“연말까지 성능검사, 내년 활용 계획”
서울시 차량공해저감과 관계자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2동에 있는 ‘노후차량 운행제한 시스템’ 앞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왼쪽) 서울 시내 도로 51곳에 설치된 100개의 폐쇄회로(CC)TV로 배기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 여부를 판정할 수 있다. 오른쪽은 한국환경공단이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배기가스를 실시간 단속하기 위해 설치한 원격측정장비.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저 차 지나갈 때 잘 보세요!”
1월 23일 오후 하얀 택배차량이 시속 28km로 서울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 교차로로 들어섰다. 길 양 옆에 놓인 가로세로 약 60cm, 높이 약 20cm의 하얀 원격측정기(RSD) 사이로 차가 지나갔다. 한국환경공단 운행차관리팀이 이 원격측정기로 달리는 경유차의 배기가스를 측정할 수 있는지 성능 검사에 나선 것이다.
잠시 뒤 원격측정기 옆에 세워둔 차량 내 모니터에 택배차량이 지나간 시간과 차 번호판 사진이 떴다. 운행차관리팀 팀원들의 눈은 일제히 사진 옆 농도표시판에 쏠렸다. 일산화탄소(CO) 0.01%, 탄화수소(PC) 10ppm, 일산화질소(NO) 128ppm, 이산화질소(NO₂) 178ppm….
이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이산화질소 농도 수치가 115ppm으로 바뀌었다. 뒤따른 소형차의 이산화질소 농도는 108ppm.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이산화질소 농도 수치가 바뀌었다. 팀원들 사이에선 “됐다! 수치가 잘 나오네”라며 미소가 번졌다.
환경공단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새로 설치한 원격측정기로 차량 3371대의 배출가스를 점검했다. 이 자료들은 경유차의 배기가스 원격 측정 기준을 만드는 데 활용된다.
지금까지 원격측정기는 휘발유차와 액화석유가스(LPG)차 배기가스 단속에만 투입했다. 경유차는 원격으로 배기가스를 측정할 수 없었다. 원격측정기가 산소와 질소의 혼합물인 질소산화물(NOx) 중에서 일산화질소와 이산화질소를 구분하지 못해서다.
환경부 관계자는 “휘발유와 LPG 차량의 배기가스에는 질소산화물 양이 적은 데다 대부분 일산화질소”라며 “디젤 엔진을 쓰는 경유차에선 이산화질소가 많이 나와 이를 측정할 기능을 보완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이날 환경공단의 원격측정기 성능 검사를 통해 경유차도 원격 단속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경유차의 매연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힌다. 2015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수도권 전체 미세먼지에서 경유차 매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22%에 이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경유차는 원격 단속이 불가능한 탓에 지나가는 차량을 세운 뒤 단속을 진행해야 했다. 기자는 1월 22일 서울 용산구 욱천고가 부근의 단속 현장에 동행했다.
“잠시만 멈춰주세요!” 서울시 차량공해저감과 친환경기동반원이 경광봉을 들어 달리는 승합차를 도로 외곽에 세웠다. 기동반원이 “매연 단속 중”이라며 운전자를 설득해 내리게 했다. 그 뒤 단속반원 한 명은 광학센서가 달린 측정기를 배기구에 넣고, 다른 단속반원은 운전석에 앉아 기어를 중립에 놓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았다. 배기구에서 나오는 매연을 직접 검사하는 것이다.
이 차의 매연농도는 43.8%로 기준치(20% 이하)의 두 배가 넘었다. 매연 배출 기준은 차종과 연식에 따라 다르다. 운전자에겐 저감장치를 달라는 개선 명령이 내려졌다. 이를 어기면 두 차례에 걸쳐 운행정지 명령이 내려지고, 이마저 어기면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런 식으로 차량 한 대를 측정하는 데 약 5분이 걸렸다. 단속반원 4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데, 하루에 단속할 수 있는 차량은 최대 30∼40대에 불과하다. 또 강제로 정차시키는 과정에서 단속반원이 사고를 당하거나 교통체증을 유발해 민원이 생기는 일도 잦다. 이 때문에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핵심 중 하나인 경유차 단속 실적은 오히려 매년 줄고 있다. 2009년 연간 경유차 약 13만 대를 점검했으나 2013년에는 7만 대, 2017년에는 3만 대를 점검하는 데 그쳤다.
이에 환경공단은 지난해 8월부터 원격측정기 성능 향상에 들어갔다. 최근 원격측정기로 이산화질소를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내년부터는 경유차에 대한 본격적인 원격 단속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경유차에 대한 원격 단속이 시행되면 장비 한 대당 하루에 단속할 수 있는 차량이 2500대 이상으로 늘어난다. 단속 인력도 장비 한 대당 3명이면 된다. 직접 노상에서 단속할 때 단속 인원 1명당 하루 10대 안팎을 단속했다면 원격 측정 시 800대가량을 단속해 효율이 80배 늘어나는 셈이다. 환경부는 “연말까지 원격측정기의 검증을 마무리하고, 원격배출 허용 기준을 마련해 내년부터 배출가스 관리 정책에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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