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눈치보며 일단 영장… 잇단 기각에 법신뢰 흔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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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박동원-조상우 등 기각… 경찰 “신중 대응땐 소극수사 비난”
검찰 청구한 이명희 영장도 기각… 전문가 “구속요건 더 세분해야”

최근 주요 사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달아 기각되면서 경찰과 검찰이 여론에 편승한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엄벌을 원하는 여론의 압박 속에서 “일단 영장부터 신청해 놓고 보자”는 면피성 수사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35)에 대한 구속영장은 무리한 영장 신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달 초 경찰은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냈다는 등의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유리컵을 바닥에 던진 것만으론 폭행죄가 성립하기 어렵고, 조 전 전무와 비슷한 사건으로 구속된 사례가 거의 없다며 무리한 신청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프로야구팀 넥센 히어로즈의 박동원 씨(28·포수)와 조상우 씨(24·투수)에 대한 구속영장도 4일 검찰에서 기각됐다. 피의자들과 피해자들의 주장이 상반되고 조사된 내용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고 구속할 필요성이 부족하다고 검찰이 판단한 것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서 주목을 받는 사건에 신중하게 접근할 경우 소극적인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며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당한 경우도 있다. 검찰은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69)에 대해 특수폭행 등 7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4일 기각됐다. 범죄 혐의 일부의 사실관계 및 법리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망의 염려가 없다며 기각한 것이다.

최근 구속영장의 기각 사례가 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거론되기도 한다.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과 검찰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구속영장 신청이나 청구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문제는 구속영장 기각 사례가 늘어날수록 수사기관의 법 집행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조 전 전무 등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여론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거나 ‘전관예우 효과 아니냐’란 식으로 반응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 기각 논란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은 불구속 수사”라며 “수사기관이 여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도록 구속 필요성을 엄격하고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구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잡음을 줄이기 위해 구속 요건과 발부 기준을 좀 더 세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허동준 기자
#여론 눈치#영장#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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