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터놓고 톡]<5>반값등록금 대안 기여입학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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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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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자율권-재정확보 도움” vs “계층간 위화감만 부추겨”

《 전국 4년제 대학의 평균 등록금이 지난해보다 4.5% 낮아지는 데 그쳤다. ‘반값등록금’ 주장이 정치권에서 시작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실제 인하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학의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대안 중 하나로 기여입학제가 거론되곤 했다. 대학에 기부금을 내는 등 기여한 바가 크면 자손에게 특례입학의 기회를 주자는 방안이다. 기여입학제는 과거 대입 정책의 기조인 ‘3불 정책’(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금지) 중에서도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터부시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몇 가지 엄격한 조건을 두면 등록금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도입을 주장한다. 반면 돈을 주고 입학권을 사는 방식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을 전문가들에게 들어 봤다. 》
■ “이래서 찬성한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긴 하지만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05년 개최한 세미나에서 4년제 대학 총장 163명은 정부에 기여입학제를 부분적으로 허용해 달라고 건의했다. 찬성론자들은 지금이라도 기여입학제를 도입해 대학에 학생 선발권과 재정 여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입학 및 졸업조건을 강화하고 거액을 기부한 해에는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보완장치도 필요하다고 했다.

○ 대학에 기여한 공로 인정


찬성론자들은 기여입학제를 기부입학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돈을 얼마 내고 입학증을 사는 게 아니라 대학에 장기간 기여한 사람에게 입학의 인센티브를 주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대학의 설립이나 발전에 재정적 혹은 다른 방법으로 기여한 독지가나 동문의 직계자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다. 연 교수는 “현재 국가유공자 자녀를 대상으로 대입 특별전형을 하는 방안과 유사하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기여입학제를 허용하는 대학이 많다. 미국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 명문 사립은 대학 발전에 공로가 있거나 기부금을 많이 낸 사람의 자녀에게 입학의 문을 열어놓았다. 예일대는 아이비리그 중 최초로 동문자녀 입학을 우대하는 기여입학제를 도입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은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유를 주니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기여입학을 허용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영국도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비롯해 적지 않은 대학이 학업 수행에 지장이 없다면 동문의 후손이나 기부금을 전달한 인사의 자녀에게 가산점을 인정하는 식으로 기여입학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 등록금 부담 완화에 도움

기여입학제를 도입하면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대학은 등록금 의존도가 높다. 그렇다고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더 늘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때는 민간의 자율적 기부를 통해 대학 재정을 확충하는 게 정답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정래 부산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국 대학의 연간 등록금 규모는 15조 원이다. 반값등록금을 추진하면 7조5000억 원을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데 지금도 정부의 대학지원금은 6조 원밖에 안 된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려면 기여입학제 도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 교수도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학 진학률이 한국보다 낮고 국공립대 비중이 높아 등록금을 정부 지원금으로 해결한다. 한국은 정부 지원금을 늘리기 힘든데, 그렇다고 등록금 인하분을 대학이 부담하면 경쟁력 향상을 포기해야 한다. 기여입학제로 대학기금을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여입학제는 교육 기회균등 실현에도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기여입학으로 확충된 재정은 장학금 확대로 이어져 가난한 학생이 입학할 기회를 넓힐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대학의 재정과 학생 선발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했다. “지금처럼 등록금과 학생 선발을 통제하면 한국 대학교육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기여입학제의 궁극적 취지는 신입생 선발과 재정에 있어 대학의 필요와 상황에 맞게 자율권을 주는 데 있다.”

○ 졸업심사 강화, 정원 외 선발 필요

기여입학제가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주의할 점이 있다. 반대론자들이 우려하듯이 돈으로 입학권을 사는 제도로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선 기여의 의미를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 교수는 미국 대학의 예를 들어 △기여도가 높은 집안의 자녀라도 다른 지원자보다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면 입학을 불허하고 △기부금을 내고 1, 2년 안에는 자녀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고 △장기적인 기부를 기여로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실력이 있는 다른 지원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정원 외 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입학한 뒤에 학업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중도 탈락시키거나 졸업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김 교수는 “사회 통념을 불식하기 위해 재정운영이 건전하고 자립 의지가 강한 사립대 10곳을 선정해야 한다. 1, 2년간 시범운영한 뒤 부작용은 개선하고 다른 사립대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이래서 반대한다”


‘비교육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계층 간 학력격차를 더 부추긴다’ ‘일부 대학만 유리하고 지방대에는 오히려 불리하다’…. 기여입학제를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강조한다. 일부 대학의 등록금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엄청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입할 만한 제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서울 상위권 대학 등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 대학 간 서열화를 부추기고 위화감을 갖게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 교육적이지 않은 선발 방법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서울교대 교수)은 “헌법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여기서 능력이란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지만 기여입학제는 교육평등권에 위배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오성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입학전형지원실장(한양대 교수)은 “대입 전형은 학생의 노력에 따른 결과만을 반영해야 하는데 기여입학제는 기본적으로 돈으로 입학한다는 측면이 있다. 개인의 노력을 강조해야 하는 대학의 교육적 역할과 맞지 않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은 대학 입시, 즉 학생의 선발과정 자체가 교육의 일부분이므로 방법 역시 교육적이어야 합리적이라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합격 또는 불합격(결과)에 수험생과 학부모가 수긍하려면 선발(과정)의 공정성이 중요한데 기여입학제에는 ‘재력(돈)’이라는 변수가 큰 영향을 미치므로 대입 자체에 대한 불신까지 부른다는 뜻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부모 재력으로 입학한다면 그 학생이 사회적 인재로 자라나는 데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 사회 통합을 저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오 실장은 “선진국 중에서는 기부금 입학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입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민감한 한국이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안 회장도 “아직 학벌 중시 문화가 남아 있는데 기여입학제를 도입하면 교육에서조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 사회 통합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 열풍이 지금보다 훨씬 약해지지 않으면 기여입학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기부가 일부 대학에만 치중되면서 대학 간 서열화와 양극화를 일으킬 우려도 제기된다. 오 실장은 “대학 서열이 정해지면서 기부금이 서울 소재 몇 개 대학에만 집중돼 대학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 지방대를 살려야 한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상위권 대학은 지금도 기부금이 많이 들어오므로 재정 상황이 나은 편이다. 중위권 대학은 기여입학제를 해봐야 이득이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해진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한국교총이 현 정부가 출범할 때 전국 초중고교 교원을 대상으로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반대가 62%였고 찬성은 20.2%에 불과했다. 교육 현장의 여론을 고려해 봐도 기여입학제는 시기상조다”라고 밝혔다.

○ 등록금 문제 해결책 아니야

기여입학제가 기부입학제와 다르다는 얘기에 대해 송 교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입학을 돈으로 사는 제도라고 지적하면 찬성론자들은 기부금 입학과 기여입학은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기여입학제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니 결국은 기부금을 받겠다는 얘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 등 부작용이 생긴다는 견해도 나왔다. 송 교수는 “우리 사회가 기여입학제를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기부금을 내는 목적이 자녀의 입학에 있는데, 얼마를 내야 어느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 실장은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으로 볼 수 없다. 기여입학제로 받은 기부금을 100% 장학금에 쓴다고 해도 일부 대학만 혜택을 본다”고 주장했다. 안 회장도 “기여입학으로 대학 재정을 확충해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보다는 대학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국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반값등록금#기여입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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