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KAIST 비교우위 지킬 개혁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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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개혁실패’ 안건 부결

KAIST 학부학생들이 13일 밤 열린 비상총회에서 ‘서남표 총장의 경쟁 위주 개혁 실패 인정’ 안건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개혁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는 학생들이 서 총장의 개혁 정책으로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힘들고 괴롭지만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아가 서 총장의 개혁이 무한경쟁을 요구하고 소통 부재로 부작용이 있었지만 KAIST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학부 총학생회는 “서 총장 취임 이래 경쟁이 과열되고 심리적 압박이 심해지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문제가 현실화됐다”면서 “경쟁과 규제 일변도의 교육정책의 실패를 총장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며 안건을 상정했다.

하지만 투표에 앞서 한 3학년 학생은 “나는 서남표 총장의 개혁에 전적인 영향을 받은 첫 번째 세대로 09학번”이라며 “미적분 물리 화학을 공부하면서 고생했고 1학년 성적도 좋지 않지만 시험을 치르고 나면 열심히 했다는 기분에 아직도 행복한 느낌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정책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는 만큼 KAIST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현재의 개혁 정책을 지켜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투표 결과는 개혁에 대한 총학생회 등 공식 기구와 일반 학생의 온도차를 반영한 대목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연이은 자살 이후 무차별적인 KAIST 공격과 서 총장 비판이 학생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이날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서 총장이 교수협의회의 비상혁신위원회 구성을 전폭 수용함으로써 일단 학교 내부적으로 일었던 소용돌이는 진정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앞서 이날 서 총장이 교수협의회의 혁신비상위원회 구성을 전폭적으로 수용함에 따라 혁신위는 곧바로 활동에 들어갔다. 혁신위는 총장이 지명하는 5명(부총장 3명 포함)과 교수협이 지명하는 평교수 5명, 학생회가 지명하는 학생대표 3명 등 모두 13명으로 구성돼 최장 4개월 동안 활동한다. 학사행정 등 학교 전반의 사항에 대해 논의를 벌여 결론을 이끌어낸 뒤 총장에게 수용할 것을 요청한다. 경종민 회장은 “혁신위에서 나온 결정은 총장이 반드시 수용해 즉시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총장은 “의견 차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따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 측과 교수협의회, 학생들의 의견 차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위가 쉽게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과반수로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학생과 교수협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최종 결론으로 결정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 총장이 그동안 추구해온 개혁의 방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셈이다.

한편 KAIST는 이날 현행 성적별 차등 등록금 부과제를 폐지하고 기초 필수과목을 한국어로 강의하는 등의 ‘학사 및 교육, 복지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KAIST는 이 같은 내용의 개선안을 15일 이사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이 개선안은 12일 학교 내부 포털 사이트에 공지했다가 삭제한 최초 개선안과 비교할 때 다소 차이가 있다. 영어강의 완화 범위가 다소 줄고 1학년의 학사경고 면제 조치를 철회했다. KAIST는 13일 발표한 개선안에서 그동안 가장 큰 논란을 빚었던 성적별 차등 수업료 부과제는 약속한 대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서 총장은 희망 교수와 학생에 한해 25% 수준에 머물던 영어강의를 100%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이번 개선안에서 KAIST는 기초 필수과목은 한국어로 강의하기로 하고 영어강의를 병행하기로 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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