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선원 인터뷰 “삼호주얼리호 피랍-구출…모두 기억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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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주얼리호 피랍부터 구출 작전까지 모든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는 세 사람이 있다. 석해균 선장(58), 김두찬 갑판장(61), 정상현 조리장(57)이다. 다른 선원도 똑같은 일을 당했지만 해적들은 선장, 갑판과 식사를 책임지는 3명과 자주 마주쳤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석 선장을 제외하고 김 갑판장과 정 조리장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이들은 똑똑히 기억했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지만 생생했다. 잊을 수도 앞으로 잊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순간을 멈춰 세우는 듯했다. "휴~" "아이고! 그때만 생각하면…." "아, 진~짜, 참말로~" 등 긴 한숨도 연발했다. 삼호드림호를 납치했던 해적이 이번 사건에 참여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도 했다. 삼호드림호를 피랍한 직후 해적들이 "한국인이 8명이나 된다"며 술과 노래를 부르며 축하파티까지 벌인 것도 이들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인터뷰는 김 갑판장의 부산 북구 친척집과 경남 김해시 정 조리장 자택에서 이뤄졌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1시간 반가량씩 인터뷰를 했지만 답변 내용은 거의 일치했다. 두 사람과 대화 내용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피랍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오전 7시 반쯤이었다. 선원들에게 작업지시를 내렸다. 그러데 갑자기 비상벨이 울렸다. '불이 났나?'라는 생각에 곳곳을 둘러봤는데 타는 냄새는 없었다. 순간 1항사가 해적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오전 7시 48분경이다. 아침 식사시간이라서 기억한다. 바로 대피소로 갔다. 얼마 있지 않아 해적들이 선박 엔진을 끄고 배를 세웠다."

―대피소에서 상황은?
"3시간가량 있었다. '메이데이(Mayday·해상에서 쓰는 구조신호)'라며 근처 해군이나 상선들에게 이동용 무전기로 계속 구출해달라고 했다. 답이 온 곳이 있었는데 너무 멀었고 감이 안 좋았다. 밖에서 대피소 쇠문을 뜯기 위해 용접하는 듯 했다. 산소탱크 굴리는 소리가 났다. 대피소 맨홀 뚜껑을 따내려고 쇠파이프로 10명이 젖히는 소리도 났다. 겁을 주려고 총도 쏴댔다. 3시간 뒤 해적들에게 뚫렸다. 우리를 조타실로 데려갔다."

―조타실에서 어떻게 했나?
"해적들은 해군 헬기 공격에 대비했다. 한국 선원을 가운데 세우고 해적이 서고, 다시 선원 5명씩 세우는 방법이었다. 헬기가 뜨면 총알받이로 삼기 위한 것이다. 칫솔 팬티 양말 전자제품 등 개인물품은 모두 뺏었다. 감시하는 놈 제외하고 좋다고 축하파티를 하더라.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아이고…."

―해적들이 본부와 연락은 ?
"13명이 조를 나눠 주야로 감시했다. 수시로 해적본부와 연락하고 지시를 받았다. 바다에 떠 있는 다른 해적들과도 수시로 연락했다. 임무가 철저히 분리돼 있었다. 사살, 생포된 13명은 납치 전문인 것 같았다. 내가 볼 때엔 소말리아 해적이 인도양까지 쫙 깔렸고 말라카해협(말레이시아 남서부 해협)까지도 있을 거다."
―해적들이 군인이라는 말이 있다
"예전 직업이 뭐든 전부 군인이다. AK소총을 분해, 조립하는데 1분도 안 걸렸다. 분해 조립할 때 눈빛은 항상 자기 총을 향하고 있었다. 전문 훈련을 받은 해적이었다. 제일 악질은 (석 선장을 쏜) 아라이였다. 아라이 새끼가 총을 한방도 안 쐈다는 말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대질심문은 우리가 요청했다. '네가 쏜 놈이다'라고 똑바로 얘기해줬다. 구조 요청할 까봐 쓰레기도 못 버리게 했다. 해적질 교육을 받은 지능형이다."

―삼호드림호를 납치한 조직과 같은 것 같다.
"맞을 거다. 눈이 쫙 찢어진 죽은 해적 놈이 이야기했다. 삼호드림호 탔었다고. 해적 13명 가운데 두세 명이 탄 걸로 알고 있다. 생포된 2명도 '삼호드림, 소말리아 고고고'이렇게 이야기했다. 생포된 놈 가운데 한 놈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들이 '삼호랑 세임(Same)'이라더라. 950만 달러(석방금액) 이야기도 하고. 우리 배로 다시 납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납치만 성공하면 당신들은 살려주겠다'고 꼬드기기도 했다.' 우리가 돈이 없다고 하자 '너희들은 돈이 없을지 모르지만 아메리카, 코리아, 컴퍼니(삼호해운)는 돈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배를 표적 납치한 걸 알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돈이 된다는 걸 아는거야. 한국인 8명 탔다니까 박수치고 노래하고 좋다고…."

―해적들이 납치하기 전 보름간 합숙도 했다. 정보나 배 구조를 알고 있는 듯 했나?
"확실히 모르겠다. 위성전화로 보스한테 보고하고. 배가 좀 느리게 가면 이놈들 눈이 뒤집혀서 지랄하고."

―석 선장이 엔진오일에 물을 타고 기관 고장을 일으키라고 지시한 걸로 안다.
"대단한 사람이다. 해적이 등 뒤에서 총을 겨눠도 '자식들아 난 절대로 안 끌려간다'고 했다. 우리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하면 '끌려가느니 난 물에 뛰어버리겠다. 죽어도 좋다. 절대 못 끌려간다'고 했다. 기름도 다 버리라고 했는데 잡혀 들어간 뒤 나올 때를 생각해서 버리지 않고 연료에 물 타고, 엔진 고장 났다고 하고, 고장 난 부분 조립 천천히 하라고 지시했다. 캡틴은 해적들에게 고함도 질렀다."

―무슨 말인가?
"한국말로 캡틴이 '야! 안 되는데 나한테 왜 그러는데?'라고 하니까 이 새끼들이 본부에 전화했다. 그러니까 선장한테 밥을 주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도 정 조리장이 머리가 좋다. 몰래 몰래 주고."

―학대를 많이 했나?
"위스키 병으로 때렸다. 주방에 소 뼈 자를 때 쓰는 중국집용 네모난 칼 알지 않나? 날마다 그걸 가지고 다녔다. 청해부대 1차 구출작전 뒤에는 선장과 갑판장에게 '소말리아에 가면 너희들은 반드시 죽인다'고 말했다."

―아라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
"구출 작전에서 아라이가 석 캡틴 찾으면서 매트리스를 덮고 있는 내(김 갑판장) 머리를 잡아챘다. 그 이전에 엔진이 멈춰 있었다. 엔진이 멈추면 비상발전기가 작동하는 데 그때 조타실 내부 불이 커져 아라이를 똑똑히 봤다. 파란색 칼라가 있는 셔츠를 입었었다. 캡틴이 총 맞은 장소는 조타실 안에 화장실 앞이다. 조타실에 1항사, 화장실 안에는 인도네시아 해양사, 미얀마 안경 쓴 선원들 등이 있었다. 아라이가 손을 다쳤다고 하는데 (해군이) 채운 수갑을 억지로 풀려다 다친 거다. 아라이는 몸이 엄청 싱싱하고 빨랐다. 최고 악질이라니까. 아라이는 청해부대 2차 구출작전에서 우리를 인간방패로 삼았다. 머리 위로 총알이 '피융 피융'하고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아라이는 허리를 숙인 채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우리 해군 총 소리는 '뚜 뚜 뚜 뚜'인데 해적 총소리는 '따 따 따 따'로 이어졌다. 총소리로 해군과 해적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라이가 총을 안 쐈다고?"

―식사는 어떻게 해결했나.
"피랍되고 첫날은 세끼, 둘째 날은 아점(아침과 점심)하고 앞으로 한끼만 먹어야 된다더라. 커피 마시고 싶어도 독을 탈까봐 그랬는지 다 허락을 받았고 밥도 똑 같이 지어먹었다. 생포된 해적 가운데 압둘라 시룸이란 조리장이 있는데 그 친구는 '밥 먹지 마라' 이런 말은 안 했다."

―청해부대 1차 구출작전 당시 상황은?
"누가 우리 선원들이 (해군 쪽을 향해) 백기를 흔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들은 (해군들이 여기 오면 위험하니까) '가라'고 한 뜻이다. 근데 해군이 (백기 투항으로 오인하고) 오니까 해적들이 드르륵 갈기더라. 그런 교전에서도 (해적들이) 총을 한방도 안 쐈다고 주장한다고 하니까 내가 진짜…. 우리나라법도 좋고 인정이 너무 많은 거라."

―2차 구출작전 당시 상황은?
"오전 4시부터 날 밝을 때까지 해군이 드르륵 갈겼다. 시간은 못 쟀다. 한국 선원이 있다는 걸 알고 판넬이나 유리창 등 소리 많은 곳만 쐈다. '꽝 꽝 꽝', 아주 전쟁터였지. 곧 최루탄 가스 냄새가 엄청 나면서 '한국 해군입니다. 한국 선원들 나오세요'라고 하더라' 그런데 해적놈들이 반항을 하더라. 한국 해군장비가 얼마나 좋은데…. 그래서 8명이 사살된 거다. 진짜 살았다 싶었다. 아 진짜…. 그때 생각이 나네."

―아라이가 조타실에 있는 한국 선원들을 밖으로 데려나갔으면 인질극이 시작될 수도 있었겠다?
"네네. 우리 가둬놓고 총을 쏘면 해군이 쏴도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아 진짜…. 완전히 영화의 장면이다. 그때 캡틴만 다치고 선원들은 다 구출된 건, 아 진짜…. 지금 누가 방문만 팍 열어도 아이고…. 아직도 먹먹하다. 진짜 대단했다. 누구 말대로 정말 빗발쳤다. 그래도 안(조타실)에 모여 있어서 안 죽은 거다. 참 나…."

―석 선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석 선장 때문에 살았다. 그는 배를 멈추기 위해 몸부림쳤다. 우리가 맞아야 할 총을 선장님이 맞았다. 오죽하면 해적들이 무슨 일만 일어나면 석 선장에게 '너부터 죽인다'고 했다. 7일에 선원들 모두 병문안을 갈 생각이다. 목숨을 내놓고 구해주신 군 당국과 정부, 국민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청해부대가 5월쯤 온다니까 진해기지에 찾아갈 작정이다. 한국선원 살려가면서 작전을 하려니까 힘들었겠지. 진짜 (우리가) 죽었으면 얼마나 또 시끄러웠을까. 고맙다. 이상이다."

조용휘 기자silent@donga
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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