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엑스포장의 한국관 외벽에 설치된 대형 파사드. 경복궁, 부산 광안대교 등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등장한다. 오사카=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3, 2, 1, 0.”
13일 일본 오사카만의 인공섬 ‘유메시마’에서 개막한 ‘오사카 간사이 만국박람회(오사카 엑스포)’의 미국 전시관.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로켓 발사 체험이 시작됐다. 벽면과 천장이 대형 스크린 등으로 가득 찬 이 전시관에 있으니 마치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에서 로켓 발사를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박람회장의 주요 전시관 중 특히 인기인 미국관을 입장하려면 40∼50분을 기다려야 했다. 이곳에는 아폴로 17호가 1972년 12월 달에서 가져온 돌도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이 돌을 보기 위해 30∼40m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운석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대기 인원이 워낙 많아 고작 두세 장의 사진만 찍고 금세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전시관을 퇴장할 때 보니 들어올 때보다 대기 줄이 2배 이상 길어졌다.
일본 오사카 엑스포장의 대형 목조 원형 건축물 ‘그랜드링’의 전경.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로 등재됐으며 대부분의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오사카=AP 뉴시스 이번 엑스포는 이날부터 10월 13일까지 184일간 열린다. 한국 미국 등 전 세계 158개국과 유엔 등 7개 국제단체가 참가해 각각 전시관을 열었다. 주제는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의 디자인’이며 세포와 물이 결합해 생긴 미지 생명체 ‘먀쿠먀쿠’가 마스코트다. 하루 전 개회식 때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 나루히토(徳仁) 일왕과 마사코(雅子) 왕비 부부, 각국 관계자 등 약 1300명이 참석했다.
‘꿈의 섬’으로 불리는 유메시마는 원래 산업 폐기물이 가득했던 곳이다. 이날 찾은 박람회장에서는 폐기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미래 도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엑스포장의 전체 면적은 155ha(헥타르)로, 축구장 217개가 들어간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둘레 2km, 지름 615m, 최고 높이 20m의 ‘그랜드링(Grand Ring)’이 있다. 일본산 삼나무, 편백나무 등을 전통 공법으로 만든 대형 원형 목조 건축물이다. 기네스북에도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로 등재됐다. 자연과 인간, 생명과 기술이 하나로 순환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일본 오사카 엑스포장 내 ‘그랜드링’ 내부 모습.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로 일본산 나무와 공법을 사용했다. 오사카=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링 안쪽에 해외관, 바깥쪽에 일본관 및 일본기업관이 있다. 60대 여성 오사카 주민은 “너무 넓어 하루 안에 다 못 볼 것 같다”며 전시관 스탬프 8개가 찍힌 수첩을 자랑하듯 보여줬다. 1970년 오사카, 2005년 아이치에 이어 세 번째 엑스포를 개최하는 나라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날 오후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찬 바람까지 불자 사람들은 비를 피해 지붕이 있는 링을 통해 이동했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좌석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 엑스포장 전체를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휴식처, 전망대, 통로 등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개최국인 일본관에는 1970년 오사카 엑스포 때 등장했던 ‘인간 세탁기’가 미래형으로 재탄생했다. 1인용 달걀 모양의 캡슐형 기계로, 사용자가 내부에 들어가면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다. 물줄기와 미세 거품이 몸 구석구석을 세척하며 머리 위에서는 샤워기가 나와 머리를 감겨준다.
세척이 끝나면 배수 후 온풍 건조가 시작되는데 전 과정이 15분에 불과하다. 심박수 등 생체 정보를 측정해 개인 맞춤형 영상과 음악을 제공함으로써 심신의 안정까지 도모한다. 중국관에는 무인 달 표면 탐사선 창어 5·6호가 각각 가져온 토양 표본이 있었다.
●AI 기술 등 활용해 소통 강조한 한국관
한국관은 이날 오전 11시 개관식을 갖고, 오후 5시부터 일반 관람객을 맞았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높이 10m, 폭 27m의 대형 파사드가 경복궁, 근정전, 서울의 고층 빌딩, 부산 광안대교 등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한 번에 100명씩 입장할 수 있고, 전체 관람 시간은 약 20분이다. 주제는 ‘소통’ ‘공존’ ‘연결’ 등이다.
한국관 방문객은 입장 전 전화부스에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받는다. 이에 답하면 그 문구가 인공지능(AI)을 통해 음악으로 재생되고 화려한 조명과 함께 콘서트장처럼 변했다.
두 번째 공간은 회색 콘크리트, 비닐, 일회용품으로 상징되는 현대사회의 사물들에서 자연과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관람객이 마이크 같은 장치에 입김을 넣으면 천장에서 연기를 담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마지막은 할아버지와 손녀의 세대 간 소통을 K팝과 연계해 영상물로 담아냈다. 고주원 한국관 전시 총감독은 “사람과 사람, 기술과 사람, 세대와 세대 간 연결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55년 만에 오사카에서 다시 열리는 이번 엑스포의 초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친다. 주최 측은 개막 전까지 1400만 장의 예매 표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NHK에 따르면 9일 기준 예매된 표는 906만 장에 불과했다. 총관람객 목표 2820만 명의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
바가지 논란도 거세다. 대형 캐리어를 하루 맡기는 금액은 1만 엔(약 10만 원)이다. 한국식 냉면 한 그릇은 2000엔(약 2만 원), 김밥 한 줄은 1600엔(1만6000원)이다. 유명 소고기 ‘구로케(黒毛) 와규 갈비 덮밥’ 1인분을 일회용 용기에 담은 것도 3500엔(약 3만5000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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