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으로 입원 중이던 49년만 ‘자수’ 日전범기업 폭탄범 사망

  • 뉴시스
  • 입력 2024년 1월 29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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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써오다 "마지막엔 기리시마로 죽고파" 고백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 등 연쇄 폭파를 벌인 급진 무장투쟁 단체인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조직원이라고 49년 만에 자수한 기리시마 사토시(桐島?·70)가 29일 숨졌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등 보도를 종합하면 기리시마는 29일 오전 입원 중이던 가나가와(神奈川)현 가마쿠라(鎌倉)시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수사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리시마는 ‘우치다 히로시(?田洋)’라는 가명으로 가나가와현의 토목회사에서 수십년 간 일해왔다.

그러던 그는 이달 회사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말기 위암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기리시마는 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도 ‘우치다 히로시’라는 가명을 썼다. 이후 지난 25일 병원 측에 “나는 기리시마 사토시다”고 밝혔다. “마지막에는 기리시마 사토시로 죽고 싶다”고 했다.

이후 경시청 공안부가 그와 접촉해 DNA 감정 등을 통해 기리시마 본인인지 확인하고 있던 중이었다.

기리시마는 경찰에게 본인 밖에 알 수 없는 사건, 가족 구성 등 이야기를 털어놨다.

경시청에 따르면 기리시마는 1975년 4월 18일 밤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빌딩 5층 ‘한국산업경제연구원’ 입구 문에 수제 폭탄 1개를 설치했다. 이후 다음날 새벽 시한장치로 이를 폭파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1975년 5월 지명 수배됐다.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지주의를 내건 무장투쟁그룹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1974년, 1975년 등 12차례 연쇄 폭파 사건을 저질렀다며 성명을 냈다. 이 가운데 미쓰비시(三菱)중공업 폭파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하고 380명이 부상했다.

이 연쇄 폭파와 관련된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조직원 10명 가운데 기리시마는 한 번도 체포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49년 간 잡히지 않았다. 그는 히로시마현 출신으로 사건 당시 메이지가쿠인(明治?院)대학 4학년생이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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