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몸으로 총 막아준 네살 소녀, 억류 50일만에 집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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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美 이중 국적 아비가일… 이웃으로 도망쳤다 하마스에 납치
바이든 “끔찍한 트라우마 겪을 것”
하마스 “인질 추가석방, 휴전 연장”… 네타냐후 “휴전 후 다시 전쟁 총력”

집에 돌아왔지만…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의 한 건물 외벽에 하마스에 억류됐다 26일 풀려난 아비가일 에단 양의 사진이 투사된 모습. 텔아비브=AP 뉴시스
집에 돌아왔지만…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의 한 건물 외벽에 하마스에 억류됐다 26일 풀려난 아비가일 에단 양의 사진이 투사된 모습. 텔아비브=AP 뉴시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억류됐다가 26일 풀려난 인질 17명 중에는 네 살 배기인 아비가일 모르 에단이 포함돼 있다. 아비가일은 가족과 생이별한 지 50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반겨줄 부모는 없었다. 지난달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키부츠(집단농장) 크파르 아자를 공격할 때 집 안에 있었던 아비가일의 부모는 모두 총격에 숨졌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아버지 로이는 당시 아비가일을 몸으로 감싼 채 총에 맞았다. 아비가일은 아버지 품에서 빠져나와 이웃집으로 도망쳤지만 이내 하마스 대원에게 발각돼 납치됐다. 아비가일의 열 살 오빠와 여섯 살 언니는 옷장에 숨어 납치를 피했지만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모 탈은 “두 남매는 바람소리만 들어도 벌벌 떤다”고 전했다. 할아버지 카르멜은 “아비게일의 귀환은 기쁘지만 아이 부모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이들의 죽음은 절대 치유되지 않을 상처”라며 안타까워했다.

● 석방됐지만 부모 사망 소식에 또 충격

27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일시 휴전 및 인질 맞교환이 합의 마지막 날인 4일 차를 맞았다. 하마스는 26일까지 사흘에 걸쳐 인질 240여 명 가운데 이스라엘인 39명과 외국인 19명 등 총 58명을 석방했다. 이스라엘도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117명을 풀어줬다. 이스라엘과 미국 이중국적을 가진 아비가일은 미국 국적자가 석방된 첫 사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 긴급 연설에서 “아비가일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아이가 집에 돌아와 감사하다”고 했다.

석방된 인질 중에는 미성년자가 상당수다. 이들은 뒤늦게 가족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노암 오르(16)와 알마(13) 남매는 석방 후 할아버지와 만나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엄마는 살해됐고 아빠는 실종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 납치 당시 남매는 부모와 함께 집 안 은신처에 머물고 있었다. 하마스 대원들이 집에 불을 지르며 가족들을 밖으로 끌어냈고 남매는 나오자마자 붙잡혀 차량 트렁크에 실렸다. 남매의 어머니는 총격에 숨졌고, 아버지는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납치된 일가족 중 일부만 풀려난 사례가 많다. 억류 기간 중 9번째 생일을 맞은 오하드 먼더(9)는 어머니, 조부모와 함께 하마스에 납치됐다 할아버지만 빼고 풀려났다. 먼더의 친척들은 “풀려난 가족들이 납치 당시 트라우마와 아직 억류된 할아버지 걱정에 아직도 충격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에서 납치된 일가친척 10명 중 미성년자와 여성 6명만 귀환한 아비그도리 가족의 사례를 전하며 “포옹, 눈물, 아픔이 따른다”고 보도했다.

● 하마스 “휴전 연장”… 이 “휴전 후 총력전”

하마스는 인질을 추가 석방해 휴전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방침이다. AF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하마스는 26일 성명을 통해 “4일간 휴전 종료 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합의문에 명시된 대로 석방자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개전 이후 처음 가자지구 찾은 네타냐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 검은 반팔티 착용)가 2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한 이스라엘군 진지를 전격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을 갖추고 이곳을 찾은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갈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개전 이후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날 하마스 지하터널도 둘러봤다. 이스라엘 총리실 제공
개전 이후 처음 가자지구 찾은 네타냐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 검은 반팔티 착용)가 2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한 이스라엘군 진지를 전격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을 갖추고 이곳을 찾은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갈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개전 이후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날 하마스 지하터널도 둘러봤다. 이스라엘 총리실 제공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인질 석방 조건의 휴전 연장에 환영한다”면서도 휴전 기간 이후 다시 총력전에 나서겠다”며 전쟁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를 했으며 “모든 인질 석방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양측 합의에 따르면 하마스가 휴전을 하루 연장하려면 그때마다 이스라엘 인질 10명을 추가 석방해야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앞서 휴전을 최장 10일까지로 못 박고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은 최대 300명까지로 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측이 최소 20명의 인질 추가 석방을 조건으로 한 일시 교전 중단 연장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팔레스타인#하마스#네살 소녀#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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