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정면 충돌 사우디의 속내는? “안보 관계 강화 원해”-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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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산유국 모임의 감산 결정에 분노, 혈맹이던 사우디와의 관계 재정립을 공언했지만 실제로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미·사우디 관계는 바이든 정부 들어 균열이 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우디가 미국의 ‘페트로 달러’ 패권을 지켜주고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해온 오랜 ‘혈맹’ 관계다.

결국 사우디에 타격을 줄 만한 징벌적 성격의 관계 재정립이란 안보 협력 축소를 의미하는데, 이미 예멘 내전에 따라 공격용 무기 판매를 중단한 데다, 이란과의 핵합의도 물건너가는 시점에서 사우디의 전략적 중요성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 “사우디에 타격을 주려는 바이든의 보폭이 제한될 수 있다”며 이 같은 바이든 미 행정부의 난처한 처지를 조명했다.

◇바이든 순방까지 했는데 감산 발표한 사우디

좁은 범위에서 최근 바이든 미 행정부와 사우디의 관계 파탄 위기는 이달 5일 사우디와 러시아 주도 산유국 모임 ‘오펙 플러스(OPEC+)’의 대규모 감산 발표로 시작됐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15일 제다를 직접 찾아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고 돌아왔다. 후보 시절부터 인권 유린의 배후이자 ‘부랑국가’ 수장으로 지목해온 빈 살만과의 만남을 두고 미국 언론의 난타를 받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철저히 국익에 기반한 외교적 행보로 풀이됐다.

사우디에 다녀온 바이든 대통령은 보름 뒤 있을 8월 오펙플러스 회의의 대규모 증산 발표를 기대했지만, 이는 실망으로 돌아왔다. 오펙플러스는 8월 5일 회의에서 일일 10만 배럴이라는 미미한 증산을 발표한 뒤 9월 5일 이를 그대로 삭감했다. 이어 10월 5일에는 일일 200만 배럴이라는 대규모 감산을 발표한 것이다.

서방 언론에서는 사우디의 결정이 ‘바이든 뺨 때리기’라는 촌평까지 나왔고, 단단히 자존심을 구긴 바이든 대통령은 연일 백악관 관계자를 미 언론에 내세워 사우디와의 관계 재정립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주말인 지난 15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CNN 인터뷰에서 내달 인도네시아 발리 개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보복을 시사했다. 사우디에 보복이 될 만한 옵션은 단연 사우디가 미국과의 70여년 동맹으로 의존해온 안전보장과 군사지원 변화일 텐데, 현재로서 바이든 대통령이 움직일 만한 보폭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에 너무나 중요한 사우디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중동 지역 내 미국의 이익에 있어 여전히 너무나 중요한 국가라고 말한다고 FT는 전했다. 대(對) 첩보 협력·이란과 인근 이슬람 세력들의 위협 등을 상대하는 안보 전선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동맹이란 것이다.

톰 카라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프로그램 책임자는 바이든 정부의 현재 반응을 두고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지만 협력을 지속할 힘과 강력한 근거도 있다”며 “이란의 위협에 대해 억지력과 방어를 유지하는 데 대한 (두 나라는) 강력한 공통의 이해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달 리야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걸프 협력 협의회 ‘워킹그룹’ 회의를 연기했다. 이 회의는 특히 중동 지역 내 이란의 군사적 위협과 그에 따른 안보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란 점에서, 이번 결정은 상징성이 크다.

에밀 호카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중동 전문가는 “미국이 무기나 물자 판매를 연기하고 안보환경에서 공식적으로 대표성을 격하하는 등의 방식으로 불쾌감을 드러낼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은 (사우디와의) 대테러 협력을 중단할 수 없으며 이란에서 눈을 뗄 수 없다”고 말했다.

집권 민주당 일각에서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대사우디 무기 판매 및 안보 협력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크리스 머피 의원은 아예 사우디에 배치하려던 공대공 미사일 280기와 이미 배치된 패트리엇 방공 체계를 우크라이나로 이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미국과 사우디 간 ‘강 대 강’ 반목 이면에는 내심 미국과의 정보 공유 개선 및 파트너십 제도화 등 안보 관계 강화를 바라는 사우디의 속내가 있다고 FT는 전했다.

◇‘키’ 쥔 사우디 속내는 안보 관계 강화 압박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 맹주 이란과 대립하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는 글로벌 무기 시장의 ‘큰손’이다. 지난해 군사비 지출은 556억 달러(약 80조 28억 원)에 달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이 같은 큰손 사우디의 무기 구매분은 지난 2017~2021년 미국 무기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바이든 행정부 취임은 미국과 사우디 간 마찰을 예고하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이미 미국과 사우디 간 70년 동맹은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있던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2012~2013년 ‘셰일 혁명’과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 타결로 균열이 갔던 터다. 빈 살만이 왕세자로 책봉된 2017년 집권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밀착이 이어지나 싶었는데, 빈 살만의 ‘약점’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다만 사우디도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 파탄을 바랄 리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빈 살만 왕세자를 향한 바이든 대통령의 인권 지적에 힘을 빼고 안보 강화 등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달 감산 결정으로 사우디와 러시아 간 밀착 의혹이 제기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중재 입장을 밝히고 4억 달러 규모 인도적 지원 결정도 발표했다.

또 외무부 성명 등을 통해 이번 감산 결정이 어디까지나 국제유가와 수급 전망에 따른 경제적 판단이었다고 적극 해명하고 있다.

파이살 빈 파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주중 국영TV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안보 파트너 관계는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안정과 안보를 유지해왔다”며 “우리는 이 관계를 지속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미-사우디 안보 협력은 서로의 이해에 부합”

결국 최근 일련의 정치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사우디 양측 모두 안보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서로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CSIS의 카라코는 “현재로선 모두가 서로에게 약간 화가 나 있지만 어느 지점에선 서로가 필요하고 약간의 춤(조화)도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다. 단지 극복해나가야 할 게 있을뿐”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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