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무조건 살겠다는 생각과 내 아내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뿐”이라며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건 오직 안전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우크라이나인 아내와 함께 마을에 있는 개인용 벙커로 대피한 상태다. 벙커는 전시를 대비해 처가에서 미리 만들어둔 시설로, 집과는 5분가량 떨어져 있다. 박씨가 농장 직원들과 두려움에 떠는 직원 가족들을 직접 불러모아 현재 13명이 벙커에 함께 몸을 숨기고 있다.
박씨는 “제가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조국을 사랑하는 아내를 지켜주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했다”며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한국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저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직전까지 헤르손에서 2년째 농업 회사를 운영했던 박씨는 아내와 함께 밀과 체리를 키웠다. 그러나 전쟁 이후 직접 수확한 체리를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맛보여주겠다는 목표도 전부 물거품이 됐다. 닷새 전 겨우 벙커를 나와 들른 농장은 포격으로 구덩이 60여개가 밭을 초토화한 모습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
러시아군이 도시 점령을 시작하면서 집 바로 앞까지 포탄이 날아들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박씨는 벙커에서 3㎞ 떨어진 농장과 사업장 확인을 위해 밖을 나서는 시간 외에 벙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그는 “바깥 상황을 알 수 없고 아무도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닷새 전 농장에 포격이 60여발 떨어진 것을 봤고 현재는 피해가 더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벙커는 인터넷과 전기 설비를 갖췄지만, 연결이 불안정하다. 감자를 포함한 식량은 보름치가 남아있다. 침구류와 의복 같은 필수 휴대품은 모두 구비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박씨는 “평소에는 반지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머물다가 소리가 매우 크거나 반복적이면 (벙커 내에 따로) 준비한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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