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자수 안하면 가족 살해” 美협력자 색출-처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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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작성한 ‘블랙리스트’ 기반… 아프간 전역 집집마다 ‘인간사냥’
NYT “주요도시 점령전 사전조사”… 곳곳 검문소 세우고 탈출 봉쇄
“이틀새 통역사 5명 살해” 증언… 소수민족-여성-인권활동가도 타깃

카불서도 ‘反탈레반’ 시위… “아이라도 살려달라” 공항은 아비규환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인 19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에서 국기를 몸에 두른 여성 등 시민이 “아프가니스탄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아프간 곳곳에서
 반(反)탈레반 시위가 벌어졌다. 같은 날 미군이 지키고 있는 카불 국제공항 밖에서 자신의 아이만이라도 아프간으로부터 탈출시키려는
 시민이 아이를 공항 담벽 철조망 쪽으로 들어올리자 미군이 손을 뻗어 받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카불서도 ‘反탈레반’ 시위… “아이라도 살려달라” 공항은 아비규환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인 19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에서 국기를 몸에 두른 여성 등 시민이 “아프가니스탄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아프간 곳곳에서 반(反)탈레반 시위가 벌어졌다. 같은 날 미군이 지키고 있는 카불 국제공항 밖에서 자신의 아이만이라도 아프간으로부터 탈출시키려는 시민이 아이를 공항 담벽 철조망 쪽으로 들어올리자 미군이 손을 뻗어 받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 탈레반은 미리 작성해 둔 ‘블랙리스트’를 기반으로 아프간 전역에서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 협력자, 아프간 정부 군경, 비판적 언론인 등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색출하고 있다. 탈레반 대변인은 20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국인을 위해 일했던 사람도 안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뒤에서는 “자수하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보복에 혈안이 돼 있다.

아프간 수도 카불 공항에서 6년 넘게 일해 탈레반에 체포될 위험에 놓인 아지지 씨는 18일 “최근 이틀 사이 탈레반에 살해된 통역사를 적어도 5명 알고 있다”면서 “내 차례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탈레반은 나를 찾아낼 것”이라고 했다. 아지지 씨는 국제난민프로젝트(IRAP)가 이날 미 국무부에 대신 제출한 ‘전시(戰時) 미국 지지자를 위한 긴급 보호 청원’에서 이같이 밝혔다.

탈레반은 18일 점령지의 60대 지방경찰청장을 잔혹하게 처형하기도 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중서부 헤라트 인근 바기스 지역의 하지 물라 아차크자이 지방경찰청장이 이날 처형됐다. 19일 탈레반 네트워크를 통해 유포된 영상에는 아차크자이가 손목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무릎을 꿇고 있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담겼다.

탈레반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가족도 살해됐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자사 소속 현지인 기자를 잡으려고 집에 들이닥친 탈레반이 기자의 가족 한 명을 죽였다고 19일 보도했다. DW는 “탈레반이 아무 거리낌 없이 ‘표적 살인’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탈레반의 보복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 등은 19일 유엔 기밀 문건을 인용해 탈레반이 카불 등 아프간 주요 도시를 점령하기 전부터 조사를 시작해 서방 국가 협력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유엔에 위험 지역 정보 등을 제공하는 노르웨이 국제분석센터(RHIPTO)가 작성한 이 문건에 따르면 탈레반은 현재 카불 등에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색출하고 있다.

탈레반은 자수하지 않으면 “가족을 살해하거나 체포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문건은 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에서 대테러 분야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아는 것을 다 털어놓으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면서 “그러지 않으면 가족이 대신 체포되고 너는 책임을 질 것”이라고 했다. 협력자 색출을 위해 끄나풀도 곳곳에 심고 있다. 유엔 문건은 탈레반이 정보원을 신속히 모집하고 있고, 모스크(이슬람 사원) 및 브로커와 접촉해 블랙리스트를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고 했다. 유엔 문건을 담당한 RHIPTO 소속 크리스티안 넬레만 박사는 BBC에 “탈레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처형될 위험에 놓였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가 사실상 ‘데스 노트’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보복 표적이 된 이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카불 공항이지만 탈레반이 사실상 봉쇄했고, 가는 길도 무장 탈레반 대원들의 검문을 피하기 어려운 상태다. 뉴질랜드군 통역사로 일한 노우로즈 알리 씨는 “검문소는 어디에나 있고, 순찰대가 계속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닌다”며 “외국군과 하루를 일했든 10년을 일했든 탈레반은 가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외국군 기지에서 목격됐다는 것뿐”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아프간 독립기념일인 19일을 기점으로 반(反)탈레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현지 소셜미디어 등에 따르면 카불 등 여러 도시에서 시위와 행진이 이어졌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아프간 만세” “‘폭력이 탈레반이 말한 평화냐” 등을 외쳤다. 19일은 1919년 아프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탈레반#美협력자 색출#처형#인간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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