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평화시위 강경진압…종이컵 던진 청년에 8년형

  • 뉴시스
  • 입력 2019년 9월 3일 0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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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군경, 무조건 잡아 '폭동죄'적용
7월 맥주캔 던진 사람도 추적 체포

최근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던 모스크바의 회사원 세르게이 아바니체프 (25)는 불과 며칠 새 갑자기 체포당해 감옥에 던져진 후 최고 8년 형을 받을 수 있는 폭동죄로 기소되었다. 그가 한 일은 고작 시위도중에 항의의 표시로 종이컵 한 개를 공중을 향해 던져 올린 것 뿐이었다.

대기업 영업사원인 그에게 러시아 수사당국은 체포한 뒤 폭동죄를 적용했다. 같은 혐의로 구속된 다른 14명도 대부분 정치활동 경력이 전무한, 우연히 시위에 가담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사태를 푸틴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강경진압하고 시민들을 억압하기 위해서 종이컵을 던진 사람, 행진 도중에 인도를 벗어나 차도로 내려선 사람 등 사소한 위법 사항을 트집잡아 대규모 투옥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모스크바 교외의 가족 별장에 와있던 야체슬라브 아바니체프도 아들이 모르는 남자들이 문을 두들긴다고 알린 몇시간 뒤에 이들이 경찰수사대인 것을 알았고 아들을 폭동의 증인으로 연행한다는 말에 경악했다.

그는 7월 27일의 시위 진압 당시 빈 종이컵을 경찰에게 던진 용의자라는 말을 경찰에게 들었고 그 날 오후 아들은 폭동죄로 감옥에 투옥되었다. 법원은 수사가 끝날 때까지 두 달동안의 구속을 명령했다.

모스크바 지방선거에서 정부가 야당 인사들의 출마를 막은 이후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자, 푸틴 정부는 평화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체제에 대한 전복 음모와 폭동 예비음모 등으로 강력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화로운 주말 시위를 허용했지만 최근에는 집회자체를 금지하고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구타하고 체포하면서 오히려 강경진압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시위대의 남녀 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체포하는 경찰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에서 구경꾼들이 플래스틱 물병을 던지거나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길을 터주다가 체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금까지 시위대는 경찰을 폭행한 적이 없으며 재산 파괴나 범법 행위도 보고된 것이 없다.

생수병을 던져 체포된 20대 대학생들도 여러 명이며 이들은 그 병으로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모두 투옥되었다.

어떤 사람이 떨어뜨린 휴대전화기를 주워주려다가 경찰에 체포된 다닐 베글레츠(26)는 길을 가다 우연히 시위대에 휩쓸렸다며 아이 둘을 둔 아빠라고 호소했지만, 검찰은 그가 시위진압 경찰 한 명을 밀친 혐의로 구속했다.

모스크바 법정에는 먼 시골에서 자녀들의 재판을 보러 달려온 부모와 친구, 친척들의 탄식과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대학생 중 한 여학생은 “이건 악몽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다. 모두들 재판 도중에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체포되고 구속되었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고 울면서 말했다.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들은 지금 같은 마구잡이 체포와 구속은 푸틴 정부의 장기적 정책은 아닌 것 같으며, 거의 두 달 동안에 걸쳐 계속 증가하고 있는 반정부 시위대에게 겁을 주기 위한 일시적 작전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모스크바 시내에는 또 다른 시위대가 탄생했다. 명문 대학을 나와 물좋은 IT회사에 다니는 가문의 자랑인 아들의 구속에 분노한 부모 등, 많은 구속자 가족들이 “내 아들을 석방하라!”며 또 다른 집회와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구속된 사소한 범행의 14명에 대해 러시아 최고 수사관 80명이 동원되었다는 말에 분노한 학부모와 가족들은 “80명의 수사관이라니!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고작 종이컵 던진 청년이나 잡는데 80명을 동원하고 있냐”면서 항의 시위에 나서고 있다.

【모스크바=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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