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여성-동성애 ‘3개의 벽’ 뛰어넘다… 美 시카고 시장에 라이트풋 당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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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검사 출신 첫 선출직 도전… 4선 의원 출신 후보 맞서 압승
“美 정치사에 한 획 그었다” 환호

2일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3대 도시 시카고 시장에 당선된 로리 라이트풋이 지지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동성애자임을 밝힌 그는 동성 연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성소수자인 흑인 여성이 시장에 오른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어서 전국적 관심을 받고 있다. 시카고=AP 뉴시스
2일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3대 도시 시카고 시장에 당선된 로리 라이트풋이 지지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동성애자임을 밝힌 그는 동성 연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성소수자인 흑인 여성이 시장에 오른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어서 전국적 관심을 받고 있다. 시카고=AP 뉴시스
미국 3대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흑인 여성이자 성소수자 시장이 탄생했다.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가 대도시 시장에 선출됐다는 사실만으로 미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당선된 로리 라이트풋(57)은 연방 검사 출신 정치 신예다. 이번이 첫 선출직 도전이다. 시카고 정계 토박이인 토니 프렉윙클을 74% 대 26%로 크게 앞서며 이변을 일으켰다. 프렉윙클은 시카고 의회 4선 의원이다. 2010년엔 시카고를 관할하는 쿡카운티 행정위원회 의장으로 당선되는 등 30년간 지역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역시 흑인 여성인 프렉윙클은 검증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프렉윙클 외에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2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빌 데일리 등 쟁쟁한 정치인들이 후보로 경쟁했다.

시카고 시민들이 이런 ‘정치 베테랑’들을 제치고 라이트풋을 선택한 것은 부패와 권력 세습으로 물든 시카고 정치 문화를 바꾸려는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승리는 무명 인사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기존 정치 문화에 대한 거부를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슬로바키아 첫 여성 대통령인 주자나 차푸토바,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우크라이나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미 최연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세계 각지에서 정치 신인들이 기성 정치인들을 제치고 약진하는 것과 같은 바람이 시카고에도 불었다는 것이다.

라이트풋은 넉넉지 못한 가정 환경을 딛고 성공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1962년 미 오하이오주에서 4명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병을 앓고 청각장애인이 된 아버지는 이발사, 잡역부로 일했다. 어머니는 정신병원과 양로원에서 일한 저임금 노동자였다.

라이트풋은 미시간대에 입학해서도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이후 일리노이주 검사를 거쳐 대형 로펌인 메이어브라운그룹 소속 변호사로 일했다. 2014년 시카고주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소년에게 16발의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을 재수사할 때 경찰위원회 의장을 맡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배우자 에이미 에슐먼과 함께 입양한 딸(10)이 있다.

라이트풋은 승리 선언 연설에서 “시카고는 당신이 어떤 피부색을 가졌는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는 새로운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면서 “부패의 고리를 끊고 다름과 개성을 존중하는 도시를 만들자”고 말했다. 임기는 5월 20일 시작된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 시카고 시장#흑인 여성#성소수자#로리 라이트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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