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훔친 흑인소년을 달리는 차 밖으로…인종차별 여전한 남아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7일 20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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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줬던 ‘해바라기 살인사건’ 피고인들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로이터통신은 남아공 법원이 5달러(약 5600원)짜리 해바라기를 훔쳤다며 흑인 소년(당시 15세)을 살해한 백인 농장주 필리프 스휘터(35)와 피터르 도레바르트(28)에게 각각 23년형과 18년형을 선고했다고 6일 보도했다.

스휘터와 도레바르트는 2017년 4월 자신들의 농장에서 해바라기를 훔친 흑인 소년을 붙잡은 뒤 달리는 트럭 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스휘터와 도레바르트는 법정에서 “소년이 경찰서로 이동하던 도중 스스로 트럭에서 뛰어내렸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남아공 사회가 인종 갈등 문제로 큰 혼란에 휩싸였다”며 “수치스럽고 끔찍한 일”이라고 밝혔다.

남아공은 오랜 기간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린 인종차별 정책을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1990년 2월 인종차별 정책이 철폐됐고 1991년 6월 거주지역법과 토지법, 주민등록법 등 인종차별 3대 악법이 폐지됐다. 넬슨 만델라 등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아직도 소수의 백인이 경제권을 장악해 인종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남아공 농업협회에 따르면 전체 인구 5400만 명 중 약 8%에 불과한 백인이 경작지 73%를 소유하고 있다. 반대로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흑인이 소유한 경작지는 4% 안팎에 불과하다. 백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대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 불균형 때문에 인종 간 강력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흑인 노동자들이 농장을 습격해 매년 백인 농장주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다. 해바라기 살인사건이 알려진 직후 흑인들은 백인 농장주들을 무차별 공격했고 이들이 소유한 주택과 사업장을 불태웠다.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올해 1월 요하네스버그 외곽 슈바이처레네케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교실 중앙에 백인 학생들을, 뒤편 구석 작은 책상에 흑인 학생을 구분해 앉혔다. 이 모습이 찍힌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또 한번 확산됐다. 2015년에도 동부 음푸말랑가 지역에서 백인 농장주 2명이 구리선을 훔쳤다는 이유로 흑인 남성을 강제로 나무 관에 넣고 불태우겠다고 협박했다. “가족까지 죽이겠다”고 위협하던 백인 농장주들에게는 각각 징역 14년과 11년의 형벌이 내려졌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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