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공들인 명예의 탑, 로힝야족 탄압으로 한순간에 ‘와르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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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꽃’에서 ‘인종청소 주도자’로… 아웅산 수지의 끝없는 추락


미얀마 ‘민주화의 꽃’으로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 겸 외교장관(73)에게 올 한 해는 악몽의 해가 됐다. 이슬람계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주도한 인물로 국제사회에서 낙인찍혀 지금까지 그에게 주어졌던 각종 상과 명예시민증 등이 줄줄이 박탈, 철회됐다. 30여 년간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쌓아올린 명성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지 불과 2, 3년 만에 바닥에 떨어졌다.

5·18기념재단은 18일 수지 자문역에게 2004년 수여한 광주인권상을 철회하고 수상자에게 부여한 예우도 모두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광주시의회가 부여한 명예시민증도 취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말까지 수지 자문역에 대한 주요 상과 명예시민권 박탈은 줄잡아 10여 건에 이르고 있다.

10월 2일 캐나다 상원은 2007년 수여했던 수지 자문역의 명예시민권 박탈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캐나다가 명예시민권을 부여한 인사는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등 모두 6명이지만 박탈당하기는 수지 자문역이 처음이었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11월 “수지는 더 이상 희망의 상징이 아니다”며 2009년 가택 연금 당시 수여했던 최고상인 ‘양심대사상(Ambassador of Conscience Award)’을 박탈했다. 국제앰네스티 측은 수지에게 “당신이 더는 희망과 용기, 영원한 인권 수호의 상징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나큰 실망을 감출 수 없다”며 “국제앰네스티는 당신이 양심대사상 수상자로서 자격을 유지하는 것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해 침통한 마음으로 당신의 양심대사상 수상을 박탈한다”고 서신을 보내 통보했다.

수지 자문역에 대한 명예시민증 박탈은 지난해 11월 영국 옥스퍼드시가 처음 시작한 뒤 올해 3월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이 “폭력에 눈감는 이에게 명예는 없다”며 ‘엘리 위젤상’을 취소한 뒤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버마족 등 135개 다민족 국가이자 약 90%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은 영국이 식민 통치를 위해 방글라데시로부터 이주시킨 불법이민자 취급을 받으며 시민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로힝야족 반군 단체인 ‘로힝야 구원군(ARSA)’이 서부 라카인주에서 경찰 초소 30여 곳을 습격했다. 정부군은 즉각 반격에 나서 소탕 작전을 벌여 두 달간 최소 97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72만 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란했다.

유엔 특별조사단은 8월 27일 ‘로힝야 사태 진상 조사 결과’ 발표에서 “미얀마군이 인종청소 의도를 갖고 대량 학살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규정했다.

노벨 평화상을 박탈하라는 국제사회 여론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8월 노벨위원회는 “수지는 1991년까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했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며 “규정상 노벨상 수상 철회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노벨위원회 측은 “노벨위의 임무는 상을 받은 후 수상자의 일을 감독하는 게 아니다. 수상자 스스로 명성을 지켜야 한다”고 해명했다.

2015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수지는 로힝야족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반감, 아직도 의회 의석의 25%가량을 차지하며 국방이나 치안 통제권을 쥐고 있는 군부 세력의 반발 등 때문에 현실 정치적으로 제약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냉혹한 정치권력가로 변신한 수지에게 더 이상 민주 인권 운동가로서의 명예는 인정할 수 없다는 비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미얀마#아웅산 수지#민주화#인종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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