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총리, “증세 반대” 대규모 시위에 사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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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긴축정책에 고물가 고실업… 세금까지 올리자 국민 분노 폭발
국왕, 교육장관에 직무대행 맡겨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추진해온 요르단 총리가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결국 사임했다.

하니 물키 요르단 총리는 4일 압둘라 2세 국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사의를 표명했고, 국왕은 이를 수리했다. 물키 총리는 요르단 정부의 소득세 증세 등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지 닷새 만에 물러났다. 압둘라 국왕은 오마르 라자즈 교육장관에게 총리 직무대행을 맡기고 새 정부 구성을 요청했다.

압둘라 국왕은 이날 요르단 언론사 대표들과 만나 “국민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민적 권리를 행사하는 모습을 보게 돼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시민들이 절대적으로 옳다. 나는 그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동 지역의 혼란스러운 정세가 경제난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일부 공적인 의사결정에서 실패와 부주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변 걸프 국가들과 달리 에너지 부존자원이 없는 요르단은 미국 등 서방의 원조에 재정적으로 의존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요르단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100만 명 이상의 난민(유엔 등록 기준 66만 명)을 수용하면서 재정난이 더 커졌다. 결국 요르단 정부는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년 동안 7억2300만 달러(약 7736억1000만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요르단 정부는 IMF가 권고하는 재정 건전화 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보조금을 삭감하고 소비세를 인상하는 고강도 긴축정책을 시행해왔다. 연초부터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올랐고, 최근에는 소득세 증세와 각종 공공요금 인상 계획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높은 실업률과 급격한 물가 상승 탓에 요르단 국민들의 분노도 끓어올랐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요르단의 실업률은 18.5%에 달하고 전체 인구의 20%가 빈곤층이다. 요르단 국민들은 지난달 30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요르단 정부는 1일 “압둘라 국왕의 지시로 연료 가격과 전기료 인상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지만 성난 민심이 가라앉지 않았다. 국민들은 증세법안 폐기와 함께 ‘물키 총리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물키 총리는 올해 2월 빵값 인상 반대 시위와 불신임투표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번에는 민심을 거스르지 못했다. 총리 경질로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요르단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모든 경제 주체가 일정 기간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는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요르단 총리#증세 반대#대규모 시위#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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