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3회>실리콘밸리의 명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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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ping out of college is not a path to massive success (대학을 중퇴하는 것이 엄청난 성공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도시의 사전)에 2009년경 오른 문장입니다. 그런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흔히 ‘대학을 졸업한다고 성공이 보장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익숙한데 ‘대학을 중퇴한다고 성공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건 이 문장이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이 ‘어번 딕셔너리’에 올랐던 때는 미국에서 ‘대학 중퇴 후 실리콘밸리 행’이라는 환상을 쫓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던 시대였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니 졸업은 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한국인의 정서죠. 대학 중퇴는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드롭아웃’(Dropout)이라는 불리는 중퇴자가 환영받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실리콘밸리죠. 이 곳에선 취업이나 창업의 조건으로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를 중퇴했습니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컬리지를 한 학기만 다닌 후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며 그만뒀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인기 있는 HBO 케이블 TV의 ‘실리콘밸리’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역시 대학 중퇴자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대학 중퇴는 ‘자수성가의 상징’처럼 됐죠. 그러나 대학 중퇴 후 실리콘밸리의 허름한 창고에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실패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품이나 서비스의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시키지 못하면 실패하죠.

대학을 중퇴하고 실리콘밸리로 달려가는 젊은이들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후 급증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금융위기의 피해를 비교적 덜 받는 안전지대로 여겨졌기에 정보기술(IT)에 소질이 있는 젊은이 수만 명이 대학을 그만두고 몰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중 성공한 사람은 20% 안팎에 불과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습니다.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실리콘밸리 언저리를 떠돌거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학교를 다닙니다.

언제나 새로운 인재에 목마른 실리콘밸리는 젊은이들의 학업 중퇴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터넷 결제 시스템 기업 ‘페이팔’은 20세 이하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실리콘밸리로 오면 창업 자금 1만 달러씩 준다는 콘테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물론 ‘뜰만한’ 아이디어를 가진 후보들에게만 자금이 제공되겠죠. 그랬더니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 중퇴자들이 참가자의 절반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는 똑똑한 10대 젊은이들을 인턴으로 채용합니다. 인턴 졸업 후 정식 채용된다는 조건을 내걸고 말이죠. 고등학생들은 구글 인턴이 되려고 미련 없이 학교를 그만 둡니다.



“먼저 학교를 졸업하거라. 학교는 책만 보는 곳이 아니잖니. 나중에 인생에 도움이 될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단다.”

대학을 중퇴하고 실리콘밸리로 가고 싶어 안달하는 자식에게 부모는 아마 이런 말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의 간곡한 부탁이 자식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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