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4> ‘오판’ 강남 스타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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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특파원 시절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준 미국인 전문가에게 점심을 대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대화 내용.

전문가: “한국어로 ‘오판’이 무슨 뜻이에요?”
특파원: “예? (속으로 잘못된 판단이라는 뜻의 ‘오판(誤判)’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이 사람이 구사할 리는 없다는 생각에) 어디서 나온 말인가요?”
전문가: “(싸이의 히트곡) ‘강남 스타일(Kangnam Style)’에 나오는 첫 단어잖아요.”

‘강남 스타일’에 등장하는 첫 가사는 “오빤 강남스타일”입니다. 강한 발음, 센 발음에 취약한 미국인답게 ‘오빠’를 ‘오파’라고 발음했던 겁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해줬습니다. 왜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전문가가 ‘강남 스타일’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만큼 ‘강남 스타일’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오빠’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있을까 하고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도시의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Oppa is a respectful Korean term used by females to call older males such as older male friends or older brothers. But now with the Hallyu kicking in, young females are using it when they call their favorite Kpop male singers or Kdrama actors.” (오빠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친구나 남자형제를 부를 때 쓰는 한국말이다. 그러나 요즘 ‘한류’가 부상하면서 젊은 여성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K팝 남자가수나 K드라마 남자배우를 부를 때 사용한다).
2012년 페루에서 열린 ‘빅뱅’ 공연 시작 전 모인 팬들.
2012년 페루에서 열린 ‘빅뱅’ 공연 시작 전 모인 팬들.

‘강남 스타일’은 물론 미국에서 한류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취재하다 알게 된 ‘코리아 드라마 클럽’의 미국인 회장은 한국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줄거리를 줄줄 외우며 “한국 드라마는 너무 ‘채벌’(‘재벌’의 미국식 발음)이 자주 등장한다”는 비평까지 곁들였습니다. 백화점에서 쇼핑하다 우연히 알게 된 미국 여성은 “(한국 배우) 이민호의 최고 팬이다. 이민호랑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좋겠다”라며 한국에 관광가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2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이민호 팬미팅 현장.
2012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이민호 팬미팅 현장.

몇 년 전 중남미의 한류 취재를 위해 멕시코를 갔더니 그 곳에서는 미국보다 훨씬 강한 한류 붐이 일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보면 먼 땅인 멕시코에서 만난 소녀들의 입에서 ‘빅뱅’ 멤버들의 이름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멍한 기분입니다.

다만 요즘 한류가 위축됐다는 평이 많습니다.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죠. 미국에서 봤을 때 대다수 한국 드라마는 비슷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고, K팝 가수들은 비슷한 리듬에 맞춰 칼 군무를 추는 집단이 적지 않아서죠. 미국은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규격화된 오락문화를 전 세계에 수출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인종적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문화 창작물을 만들어 냅니다. 한류가 오래 번영하려면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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