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서 미망인과 유부남 소개팅 사이트 유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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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2008년부터 3차례에 걸친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남성 1400여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남성들이라 부인들은 결혼 생활도 제대로 못 해보고 과부가 된 사례가 많다. 이런 여성들이 최근 가자지구에서 성행하고 있는 소개팅 사이트를 통해 새 유부남 남편을 만나는 게 새로운 트렌드라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 보도했다.

소통 또는 재결합을 뜻하는 아랍어 ‘웨살(Wesal)’이라고 이름붙인 가자지구 첫 소개팅 사이트는 3월 처음 생긴 이래 지금까지 160쌍을 결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젊은 여성과 새 부인을 들이려는 40세 미만 유부남의 조합이다. 보수적인 가자지구 사회에서 한 번 결혼했던 여성이나 이혼녀가 경제적으로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데다 총각과 결혼하긴 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삶의 안정을 위해 택한 자구책인 셈이다.

수학교사 아부 무스타파 씨(34)는 소개팅 사이트에서 남편이 전쟁으로 사망한 여성 중 자녀가 없는 25~30세 여성을 물색하다가 두 번째 아내를 만났다. 그의 두 번째 아내는 남편이 2012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이후 이 사이트를 통해 무스파타 씨를 알게 돼 결혼에 골인했다. 무스타파 씨는 “그녀는 아름다우면서도 순교자의 옛 부인”이라며 “순교자의 옛 부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슬람 사회는 남자 1명이 아내 4명을 합법적으로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 사회다. 사이트 설립자 하¤ 셰이카 씨(33)는 전쟁 통에 젊은 과부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들이 재혼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현실에 주목해 새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셰이카 씨는 “이 사이트를 통해 여성들이 종교적 또는 애국적 압력 없이 차기 남편에 대해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의 과부들은 남편이 사망하면 시댁으로부터 ‘남편의 행제들과 재혼하라’는 압력을 많이 받는다. 미망인 몫으로 지급되는 경제적 지원을 계속 묶어두기 위해서다. 남편이 특정 정치세력에 몸담았었다면 같은 세력 안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재혼하라고 여성을 압박하기도 한다. 과부들은 그 정치 세력에서 지급되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마음에 없는 재혼을 하기도 한다고 NYT는 전했다.

소개팅 사이트에 처음 가입할 때는 한국의 결혼정보회사처럼 사는 지역, 연봉, 결혼여부, 자녀 수 등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기록한다.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이 조건에 맞춰 상대를 검색할 수 있다. 다만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프로필 사진을 올릴 수는 없고, 온라인 채팅도 금지한다. 만약 남녀가 서로 마음에 들어 한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남자에게 여성의 주소가 제공되고, 남자는 48시간 안에 여성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모든 사용자는 ‘사이트에 기입한 모든 정보는 사실이며, 이 사이트를 유흥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에게 맹세하는 문구에 동의해야 한다. 셰이카 씨는 “이 사이트는 미국식 데이트 사이트를 이슬람식에 맞춘 ‘할랄 버전’”이라고 말했다.

사이트는 광고비로 운영되며, 이 곳을 통해 결혼한 커플은 각각 100달러(약 11만 원)씩 내야한다. 가자지구 인구 200만 명 중 10만 명이 사이트를 방문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이스라엘의 전방위 포위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가자지구에선 빈곤이 심해지고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혼인율이 줄고 이혼율이 오르는 추세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당국이 코란을 암기할 줄 아는 모든 신랑에게 1500달러를 일괄적으로 주고 있지만 혼인율 감소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 사이트가 과부들만을 위한 건 아니다. 미혼남녀나 이혼남녀도 원하는 조건에 맞춰 배우자감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결혼을 연봉 등 조건에 맞춰 거래처럼 한다며 반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가자지구의 미혼녀 리나 제인 씨(25)는 “여자는 양파 포대처럼 사고파는 게 아니다”라며 “결혼에 대한 열망을 연봉으로 제한시키는 것 같아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카이로=조동주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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