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정치 리더십 진공상태… 여야 지도부 모두 코너에

[브렉시트 쇼크]보수당, 캐머런-존슨 권력충돌
제1야당 노동당 소속 의원들 코빈 대표에 불신임안 제기
스페인 총선 극좌 ‘포데모스’ 선전… 제1야당땐 EU와 마찰 불가피

브렉시트 충격은 영국을 정치 리더십의 진공 상태로 몰아넣었다.

국민을 EU에 남아 있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한 영국의 거대 양당은 내홍을 앓으면서 권력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 패배의 책임을 지고 10월 사임을 선언한 데 이어 제1야당인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도 거취가 불투명해졌다.

노동당 하원의원 2명은 코빈 대표 불신임안을 제기해 이르면 28일 불신임 투표가 실시된다. 이들 의원은 “코빈 대표가 잔류 지지 유세에 너무 늦게 나왔고 성의 없이 캠페인에 임해 지지층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24일 불신임안을 제기했다. 노동당은 EU 잔류를 당론으로 정하고 브렉시트 반대 투표를 촉구해 왔다.

코빈 대표는 26일 대표 교체 쿠데타에 앞장서고 있는 예비내각의 외교장관 힐러리 벤을 해임하면서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오히려 코너에 몰리는 분위기다. 영국 BBC는 “예비내각의 절반 이상이 코빈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해 사표를 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교육장관, 교통장관, 보건장관 등 7명이 속속 사퇴 의사를 밝혔다. 코빈 대표 측은 “사퇴하는 내각은 모두 교체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보수당 쪽도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여성인 테리사 메이 내무부 장관 총리설이 급부상했다. 브렉시트 후폭풍에 우려를 나타내는 보수당 세력 중심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캐머런 총리 쪽이 메이 장관을 선호하면서 캐머런과 존슨의 2라운드 충돌이 예고됐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다. 지지율이 10%로 바닥권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브렉시트 후 더욱 궁지에 몰렸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주말 주요 정당 지도자들을 소집해 브렉시트 대책을 논의했지만 충고만 잔뜩 들어야 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공화당 대표는 “프랑스가 주도하는 새로운 EU 조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국민전선 마린 르펜 대표는 “영국이 EU를 떠나 프랑스 사람들은 더 혼돈에 빠졌다. ‘프렉시트(Frexit) 국민투표’를 하자”고 공식 요청했다.

이처럼 EU 회의론을 외치는 국내 우익 세력들의 입을 막기 위해 올랑드 대통령은 영국에 강력한 본보기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과의 탈퇴 협상에서 특별히 고약하게 굴 필요는 없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유럽의 남은 ‘원투 펀치(독일과 프랑스)’ 간 온도 차가 느껴진다.

26일 열린 스페인 총선에서는 제3정당이던 극좌 성향의 포데모스가 제1야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포데모스는 2010년 봄 스페인의 젊은층이 주도한 시위 ‘로스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이후 설립됐다. EU가 강조하는 긴축에 반대하고 독일 중심의 EU에 반감이 커 보수당과 함께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EU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슬로바키아는 다음 주부터 신나치 계열의 극우 정당 슬로바키아국민당 주도로 ‘슬렉시트’(슬로바키아의 EU 탈퇴) 찬반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한다. 35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 실시가 확정된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