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감정적 투표’ 놀란 여야… 양극화 대책 ‘퍼주기’ 변질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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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쇼크]브렉시트, 한국정치에 어떤 영향

세계 각국의 ‘신고립주의’ 흐름은 불행히도 표심(票心)으로 나타나고 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 의 ‘도널드 트럼프 현상’은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내세운 왜곡된 우파 정치인과 이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의 손뼉이 마주치며 전 세계를 전율케 하는 굉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과연 예외일까. 어느 나라 못지않은 양극화 위기 속에서 오로지 내년 대선 승리만을 위한 ‘표(票)퓰리즘’이 난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양극화 해소 외치고 있지만

한국 정치 흐름은 외견상 세계적 흐름과는 거꾸로다. 미국과 유럽에서 중도가 몰락하고 극우(極右)가 급부상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여야는 일제히 중도화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지난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야 3당은 나란히 ‘양극화 해소’를 첫 번째 과제로 내세웠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재벌 개혁과 함께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하며 보수당의 전통 가치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대선주자들도 일제히 중도층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새누리당이 선거 때마다 ‘집토끼’(고정 지지층) 생각만 하고 과거에 함몰되는 등 너무 극우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당내에서 우파적 소신을 밝혀온 김 전 대표조차 중도층 공략에 나선 것이다. 유승민 의원의 ‘공화주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공존과 상생’ 등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야권은 ‘브렉시트 위기’를 ‘정권교체 기회’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겐 ‘경제민주화 세일즈’의 호기(好機)다. 신고립주의가 장기 경기침체로 인한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 심화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의 충격처럼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양극화 문제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국회 차원의 ‘격차 해소 로드맵 마련’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 주도하고 유승민 의원, 김종인 대표,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 등이 참여하는 국회 연구모임 ‘어젠다 2050’이 29일 창립총회를 연다. 어젠다 2050이 초당적 중도화 흐름을 선도할지 주목된다.

○ 분노에 기댄 ‘포퓰리즘 공약’ 남발되나


문제는 양극화 해소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다르다는 점이다. 당장 뾰족한 해법이 없는 데다 증세(增稅)와 복지 수준 등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본 소득이나 최저 생계비 보장 같은 ‘세금 퍼주기 공약’이 유권자의 ‘불안과 분노’와 맞물려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영남권 신공항,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 등 지역 표심을 겨냥한 대형 국책사업 공약이 또다시 대선판을 흔들 수도 있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더민주당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서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서남권 공항 활성화 대책을 요구하는 등 시도지사마다 민원사항을 쏟아냈다. 지방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는다는 점에서 내년 대선에선 이런 요구가 봇물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트럼프 같은 ‘극우 후보’가 등장하기는 힘들 것이란 시각이 많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국의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를 강조하고 있어 고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한국의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고립주의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트럼프 같은 ‘제3 세력’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대선주자들에겐 외교 역량과 위기대응 능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일각에선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외교전문가’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입지가 단단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내년 대선에서도 결국 경제 활성화 해법이 최대 화두가 될 것이란 점에서 반 총장이 경제 이슈를 선점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정계 개편의 뇌관으로 떠오른 개헌 논의는 경제와 안보의 복합 위기 속에서 동력을 잃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형준 교수는 “분권형 대통령으로 경제와 안보 위기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장 ‘발등의 불’ 앞에 ‘미래 설계’ 논의는 묻힐 것이란 얘기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송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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