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로 가는 오스트리아… 유럽서 되살아나는 ‘나치 망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反난민’ 호퍼, 대통령 당선 유력… 나치 출신들이 만든 자유당 소속
WP “트럼프와 쌍둥이처럼 닮은꼴”… 가디언 “양의 탈을 쓴 늑대” 비난

“이웃 나라에 의해 강요된 다문화주의, 세계화, 대량 이민을 반대한다.”

극우 공약을 내걸어 ‘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자유당(FP¨O)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45·사진)가 22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할 것이 확실시된다. FP¨O의 호퍼 후보는 무소속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후보(72)와 맞붙었다.

호퍼의 당선이 확정되면 나치 패망 이후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에서 최초로 극우 성향의 국가수반이 탄생하는 것이다. 의원내각제인 오스트리아에선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지만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을 행사한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덴마크 등의 극우 정당들이 지난해와 올해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선전한 데 이어 유럽에 부는 ‘극우 바람’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인츠 게르트너 빈(Wien)대 정치학 교수는 “호퍼의 당선은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환경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외국인 혐오, 난민 규제를 내건 극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호퍼는 결선 투표를 앞두고 지난 주말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판데어벨렌 후보를 53% 대 47%로 제치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도박사들도 주로 호퍼에게 돈을 걸었다. 호퍼가 반(反)난민 공약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지난해 전체 인구의 1%가 넘는 9만 명의 난민들이 오스트리아로 유입되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뒤늦게 불법이민자 단속에 나섰지만 난민 수용에 비판적인 FP¨O의 주장이 옳았음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잇따른 극우 성향의 주장으로 호퍼가 ‘유럽의 트럼프’ 별명을 얻은 반면 판데어벨렌은 난민 규제 철회를 공약해 ‘오스트리아의 오바마’로 불린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호퍼는 부드러운 미소와 재치 있는 언변을 갖추었고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 그는 양복 재킷에 늘 권총을 갖고 다닌다. 그 이유로 “위기 상황에서 누구나 스스로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녀들과 함께 사격 연습을 하는 사진을 즐겨 올린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늘 친절한 이웃이나 중도파 정치인처럼 포장하지만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경계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호퍼는 아이젠슈타트에서 항공기술대를 졸업했고 헝가리를 사이에 둔 국경을 지키는 군인으로 복무했다. 19세기 독일 국수주의적 이상을 뿌리로 둔 독일남성동호회 ‘대학생학우회’의 명예회원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와 호퍼가 ‘쌍둥이처럼 닮은꼴’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다면 호퍼는 ‘오스트리아 제일주의’를 외친다. 난민 차단용 장벽 설치와 무슬림 입국 차단 주장도 쏙 빼닮았다.

집권을 앞두고 있는 FP¨O는 1950년대 일부 나치 출신 정치인들이 창당한 정당으로 1990년대 대표적 극우 정치인 외르크 하이더가 대표를 맡으면서 주요 정당으로 떠올랐다. 2000년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하면서 유럽 정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극우#오스트리아#나치#대통령#선거#난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