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참상 찍은 여기자 “남 도울수 없는 처지…기자로 최선”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3월 23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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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 공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직후, 참혹한 현장 풍경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낸 여기자가 피해자들을 돕지 못한 것에 대해 “남을 도울 수 없는 처지에 기자로서 최선이었다”고 항변했다.

22일(현지시간) 발생한 브뤼셀 공항 폭탄 테러현장에서 가장먼저 사진으로 소식을 전한 이는 다른 일로 우연히 공항을 찾은 조지아 방송사의 케테반 카르다바 기자(56·여)였다.

폭발의 충격으로 옷과 신발이 찢어진 채 울상을 짖고 있는 여성, 피가 흐르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잡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여성,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선혈이 낭자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성 등 각국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전달된 사진은 그가 사고 직후 렌즈에 담은 것이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의 23일 보도에 따르면, 특파원으로 브뤼셀에 8년째 거주하고 있는 카르다바는 전날 스위스 제네바 출장을 위해 공항을 찾았다.

첫 번째 폭발물이 터지는 순간, 그는 1.5m 떨어진 출국장에서 출국수속을 밟고 있었다. 카르다바는 폭발이 일어나자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연기 가득한 주변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부상자를 구조할 도의적 책임보다 직무를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우려한 듯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신 “부상자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는 말을 되풀이 해 강조했다.

카르다바는 “사람들이 피를 철철 쏟았다. 모두 다리가 없었다. 나도 내 다리를 자꾸 쳐다봤다. 손으로 있는지 없는지 만져 확인도 했다”며 “목소리를 높여 도움을 청했으나 주변에 의료진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을 돕지도 의사를 부르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기자라면 무엇을 했겠는가. 테러 순간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게 최선이었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언론인이 자책하는 상황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994년 수단에서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라는 사진으로 풀리처상을 받은 케빈 카터는 아이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받았다. 카터는 1994년 7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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