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힐러리 찍겠다”… 美보수의 ‘적전 분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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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 트럼프 외교정책 불신… “공화당 못구하면 美라도 구해야”
“트럼프 대세론 막기엔 너무 늦어”… ‘본선 대비’ 현실론도 만만찮아

도널드 트럼프(70·사진)의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등극이 유력해지자 미 보수 세력이 그를 지지할지를 놓고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에게 본선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른 한편에선 트럼프 대세론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은 지금 대혼란(pandemonium) 상태”라고 표현했다.

조지 W 부시 정권의 기축이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2일 트럼프의 대선 후보 지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차라리 클린턴을 찍겠다”고 얘기할 정도다.

엘리엇 코언 전 국무부 자문관은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비교하면 클린턴이 큰 차이로 차악(次惡)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시 정권에서 외교정책 입안에 깊이 관여했던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공화당을 구할 수 없다면 미국이라도 구해야 한다. 트럼프 대신 클린턴에게 표를 던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로버트 졸릭 전 국무부 부장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피터 피버 듀크대 교수 등 공화당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이르면 3일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에 트럼프의 외교 구상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실을 예정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트럼프 대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46)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지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내 보수 세력인 티파티의 지지를 받는 크루즈는 공화당 내에선 트럼프 못지않은 비주류다. 경선 주자였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냐 크루즈냐의 문제는 머리에 (총을) 쏠 것이냐 독을 먹을 것이냐의 문제”라며 “(해독제를 기대하고) 독을 선택하는 게 낫다. 총을 쏘면 그대로 죽는다”고 말했다. 그는 “크루즈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다. 사실 같이 상원에서 활동하며 그가 죽어 버렸으면 했을 때도 많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공화당 일각에선 트럼프 대세론을 인정하고 본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만만찮다. 트럼프를 비판해 봤자 본선을 앞두고 적전 분열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경선 내내 원수지간으로 다퉜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선거 전략을 자문했던 알렉스 카스텔라노스는 2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와서 (중재 전당대회 등) 다시 선거 규칙을 바꾼다는 것은 애가 엄마에게 칭얼대는 것과 같다. 트럼프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윌리엄 베넷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어찌됐든 트럼프는 그 나름대로 공정한 과정을 거쳐 대선 후보 지명 직전에 왔다. 이제 와서 트럼프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트럼프와 한때 관계가 불편했던 폭스뉴스 소유주인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도 ‘트럼프 후보론’에 가세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면 그를 중심으로 공화당이 뭉쳐야 한다”며 “트럼프가 ‘나는 통합주의자’라며 공화당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데 공화당이 통합하지 않으면 미친 짓”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제2의 오바마’를 꿈꿨던 의사 출신 흑인 후보 벤 카슨(65)이 조만간 경선에서 중도 하차한다. 카슨은 성명을 내고 “슈퍼 화요일 경선 결과를 보면 정치적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3일 공화당 TV토론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대선#도널드 트럼프#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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