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공항에 비행기 한 대가 착륙했다. 이어 긴장한 표정의 한 중년 신사가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비행기를 내려섰다. 미국의 외교 사령탑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아프리카 내전의 상징인 소말리아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지난 1993년 미군 특수부대 소속 블랙호크 헬리콥터 2대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격추돼 미군 18명이 전사한 ‘블랙호크다운’ 사건 발생 이후 미 국무장관의 소말리아 방문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다.
20년 넘게 종족 간 분쟁 등에 휘말렸던 소말리아는 지금도 내전 탓에 치안이 불안하다. 대낮에도 모가디슈 거리를 다니기 어려울 정도. 때문에 케리 장관은 그나마 치안이 보장된 모가디슈 공항 안에서만 3시간가량 머문 뒤 다음 행선지인 지부티로 떠났다. 하산 셰이크 모하무드 대통령과의 면담도 공항 회의실에서 진행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케리 장관은 면담에서 “다음 방문 때는 모가디슈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모하무드 대통령은 “케리 장관의 방문은 ‘위대한 순간’”이라며 “모가디슈 시내의 치안은 이전과 비교해서는 나아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케리 장관의 이날 ‘깜짝 방문’은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와 내전을 벌이고 있는 소말리아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소말리아가 무난히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현 정부를 돕는 게 동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케리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알샤바브와 싸우는 소말리아 정부를 돕는 2만2000여 명의 아프리카연합 소말리아임무단(AMISOM)에 병력을 파견한 부룬디, 지부티,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정부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소말리아와 외교 관계를 단절한 적은 없지만, 시아드 바레 정권 전복에 이어 종족 간 유혈 분쟁으로 빠져든 1991년 모가디슈 주재 대사관을 폐쇄했다. 2년 뒤 1993년에는 모가디슈에서 ‘블랙호크다운’ 사건까지 발생해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런 뒤 현 모하무드 대통령이 2012년 9월 정권을 잡자 미국은 새 정부를 공식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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