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약속 깨고 핵실험까지… 美 “이란과는 완전히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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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상 타결/北核에 미칠 영향]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타결되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은 다시 북한 핵 문제에 쏠리고 있다. 미국 정가에선 이번 협상을 계기로 본 북핵 협상 전망과 관련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오가지만 현실적으로는 비관론이 더 우세한 상황이다.

낙관적인 요소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 문제에 한숨을 돌린 만큼 북한 핵 문제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된 환경이 조성된 점이다. 미 전문가들은 2020년까지 북한이 최대 100기의 핵탄두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워싱턴에서 나온 만큼 “북핵에 마냥 손을 놓고 있느냐”는 여론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협상 시한을 수차례 연장해 가면서까지 이란 핵 협상을 타결한 만큼 북핵 문제에서도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다시 한번 열어 놓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향후 이란과의 추가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다음은 북한’이라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2일 “큰 밑그림을 마련한 이란 핵 협상이 6월까지 진지하고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비슷한 노력을 북한에도 해볼 의욕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란 변수’가 북핵 문제에 별다른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994년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조지타운대 교수)는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새로운 핵 협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선은 이번 협상안을 들고 공화당을 설득하고 반대 논리를 방어하는 데 온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란과 북한 핵 문제가 본질적으로 별개의 사안이자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편입된 상태에서 평화적 핵 이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은 NPT 체제 밖에서 3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오바마 행정부도 일찍부터 이란과 북한 핵 협상은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그어 놓았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19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오바마 행정부 출범 당시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었고 핵실험도 했지만, 이란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실험도 하지 않았다.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2013년부터 이 논리를 강조하며 이란과의 대화를 정당화해 왔다.

특히 과거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다가 필요하면 다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서 약속을 어겨 온 전력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는 북한과의 대화에 따른 정치·외교적 위험을 감수하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북한이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비핵화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워싱턴 카네기평화재단이 주최한 비확산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던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본보 기자에게 “워싱턴에서 만난 관료들은 물론이고 주요 싱크탱크 관계자들 대부분이 북핵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오바마 정권에서 진전된 논의나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지 않았다. ‘이란 다음엔 북한 차례’라는 식의 기대는 현재로선 오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이란 핵 협상이 오히려 북한에 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는 지적도 한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정권이 핵 개발을 포기할 의지가 없는 게 확실한 상황에서 만일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이란은 원심분리기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느냐’며 오히려 걸고넘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반도담당 선임연구원도 “향후 이란이 변하는 모습을 북한이 어떻게 지켜볼지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미국의 묵인하에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봤고 러시아에 핵을 넘겨준 우크라이나가 다시 러시아에 크림 반도를 빼앗기는 장면도 최근 목격했다. 핵 포기 이후 이란의 향배는 북한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이승헌 특파원
#이란#핵협상#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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