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뿌렸던 ‘헬리콥터 벤’의 결자해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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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양적완화 축소 깜짝카드
1월 퇴임 앞두고 뿌린 씨 거둬… “금융위기 너무 늦게 알게돼 후회”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려오던 시기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을 맡아 돈을 풀어온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시중에 풀어놓은 돈을 거둬들이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선택을 했다. 하늘에서 돈을 뿌린다는 뜻으로 ‘헬리콥터 벤’으로도 불리던 버냉키 의장은 경기회복을 위해 5년간 4조 달러(약 4234조 원)가 넘는 유동성을 공급했다가 퇴임을 앞두고 이를 축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초 월가 전문가들은 재닛 옐런 차기 의장이 취임한 내년 초에 출구 전략이 시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경제전문가 64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0%가 내년 이후로 시기를 점쳤다. 하지만 내년 1월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주재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버냉키 의장은 예상을 깨고 양적완화 축소 카드를 빼들었다.

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의) 퇴임이 이번 결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며 ‘결자해지’라는 평가를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뿌린 씨를 거두고 떠나는 셈이다. 옐런 차기 의장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 의장은 재임 기간의 실수와 못다 이룬 정책 과제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2005년 첫 취임한 버냉키 의장은 부동산 버블에 이어 부실모기지 채권 판매에 따른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엇갈리지만 시중의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양적완화, 단기국채를 팔고 장기국채를 사들여 금리 인하를 노리는 오퍼레이션트위스트(OT) 등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동원해 경기 침체를 막아낸 업적에는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스스로 변칙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헤지펀드 업체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다리오 대표는 “버냉키 의장은 미국을 핵전쟁에서 구해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미국#벤 버냉키#헬리콥터 벤#결자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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