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2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체육관 부근 해변에서 북한 노동자 5명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는 약 3000명의 북한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블라디보스토크=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 최근 한반도 최북단의 ‘두만강 삼각주’가 용틀임을 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중국 훈춘(琿春)-북한 나선을 잇는 두만강 삼각주는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는 이달 8,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동진(東進)을 선언한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창지투(長吉圖·창춘 지린 투먼) 프로젝트를 강력히 추진 중이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은 나선 개발로 도탄에 빠진 경제에 새 불씨를 넣으려 한다. 천지개벽을 꿈꾸는 두만강 삼각주의 거센 변화의 바람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이곳처럼 북한 사람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는 세계에서 없다.”
지난달 하순 러시아 극동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인구 62만 명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이번 주말 이곳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공사에 투입된 인부들이다.
지난달 22일 오후 시내 체육관 부근 해변. 석재로 난간을 설치하는 북한 노동자 5명이 무더위 속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인근의 작은 동산을 오르는 계단 설치 공사장에서도 북한 노동자 10여 명이 바삐 움직였다. 조장으로 보이는 북한인은 휴대전화를 들고 담배를 문 채 함경북도 사투리로 통화하고 있었다.
시내에서 인부들이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설치한 ‘비계’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북한 노동자가 있었다. 한 현지인은 “북한인은 동양인으로 백인과 한눈에 구별되지만 동양인 중에서도 키가 작고 마른 데다 햇볕에 그을려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동양인만 다가가면 경계를 했다. 몇 번이나 “안녕하세요”라며 말을 걸어 봤지만 허사였다. 이들은 주로 작업장 근처의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또 도시 외곽에 집단 거주지 2곳을 마련해 전세버스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이곳의 북한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늘었다. 오랫동안 러-북 관계를 연구해온 라리사 카브롭스카이아 러시아 과학원 박사는 “APEC 준비를 위해 터키와 북한에서 인력을 수입했고 북한 사람들은 단순 노무직에, 터키인은 기술직에 주로 있다”고 말했다.
현재 3000명 정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 명인 한국인보다 북한 상주인력이 더 많은 상태다. 월평균 급여는 1000달러(약 113만 원) 안팎.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의 지난해 평균임금 109달러(약 12만 원)보다 10배 가까이 많지만 국가에 바친 뒤 개인 손에 들어가는 돈은 250달러 정도다.
북한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항구인 나홋카에 20명이 넘는 외교관을 파견한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하바롭스크에도 영사 8명이 파견된 출장소가 있다.
러시아는 극동에 자국 부동항들이 여전히 미개발로 남아 있지만 북한 나선지구에 투자를 시작했다. 러시아와 북한은 빠르면 10월, 늦어도 올해 말까지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하산과 나선을 잇는 54km의 철도를 정식 개통한다. 러시아가 철도 현대화 사업비 83억 루블(약 2909억 원)을 전액 부담했다.
양국은 철도 궤도로 표준궤와 광궤(廣軌)를 함께 설치했다. 한국 중국 북한의 표준궤보다 폭이 넓은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나선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 소식통은 “러시아가 나선항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이보다 더 명확히 드러낼 수 없다. 이는 러시아의 제2의 동진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영토로 두만강 위쪽 동해에 접한 연해주는 면적이 약 16만5900km²로 한반도의 75%에 이르지만 인구는 195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 등에는 세계 여느 국제도시 못잖게 각국 공관이 몰려 있다. 이 지역이 가진 전략적 성격과 풍부한 천연자원 때문이다.
일본은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사할린에 각각 총영사관을 뒀다. 교민 수가 500명도 되지 않지만 영사는 50명에 이른다. 또 NHK 아사히신문 교도통신 등 일본 주요 언론사가 특파원을 뒀다. 교민이 200명에 불과한 미국도 총영사관을 뒀다. 교민 수가 30명 안팎인 인도도 영사 3명의 총영사관을 개설했다. 중국도 하바롭스크에 총영사관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총영사관 분관을 두고 있다. 영사 수는 약 30명이다. 한국은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영사 10명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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