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죄수복 안입은 구카이라이, 中 최고위층 ‘그들만의 재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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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국제부 기자
구자룡 국제부 기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씨가 9일 오전 8시반 경 안후이(安徽) 성 허페이(合肥) 시 중급인민법원 법정에 들어섰다. 두 명의 여자 경찰이 구 씨의 양쪽 팔을 살짝 잡고 있을 뿐 일반인 죄수처럼 수갑을 차거나 죄수복을 입지는 않았으며 왼손에는 작은 서류 뭉치도 들고 있었다. 살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중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대만 롄허(聯合)보는 10일 재판정에 선 구 씨의 모습은 32년 전 공개됐던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문화대혁명 광풍의 주역으로 4인방의 수괴였던 장칭은 ‘국가와 인민에 심각한 재난적 내란을 범한 죄’로 재판을 받았다. 죄목은 다르지만 고위층 여성에 대한 정치적인 의미가 큰 재판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장칭이 재판을 받는 도중 재판부에 눈을 부라리고 고성을 지른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구 씨도 얼굴을 똑바로 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인 점도 비슷했다. 장칭은 사형 선고 후 2년 뒤 무기로 감형받았고 이어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가택연금됐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구 씨도 사형 판결을 받은 후 무기로 감형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최고 지도부 개편을 앞두고 허베이(河北) 성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중국 지도부는 신속히 구 씨에 대한 재판을 마무리 짓기만을 바라고 있다. 자칫 보 전 서기도 연루될 수 있는 ‘경제 문제’를 빼고 살인죄로만 기소한 것도 이번 재판의 영향이 중국 정치권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재판을 “잘 짜여진 한 편의 정치 드라마”라고 꼬집었다. 베이징(北京)의 법무법인에서 형사 사건 변론을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겉으로는 공정한 공개 재판인 듯하지만 금융전문 국선 변호사 선임부터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라고 비판했다.

구 씨의 재판을 보면 범죄자에 대한 단죄라기보다 마치 정치 협상 결과를 보여주는 요식행위 같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정치 경제 그리고 법치에서도 많은 변화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최고위층이 관련되거나 공산당의 집권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허페이 중급인민법원은 외신의 재판 취재는 봉쇄하면서 재판은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이나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구 씨 재판 소식이 전파되는 것은 철저히 통제하고 나섰다. ‘그들만의 재판’에 불만을 갖는 일반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더 의식하는 점은 장칭 때와는 달라진 점으로 보인다.

구자룡 국제부 기자 bonhong@donga.com
#기자의 눈#보시라이#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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