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시달리던 약사출신 70대, 국회의사당 앞 광장서 권총자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5일 15시 48분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한 은퇴 약사가 4일(현지시간) 아침 정치인들의 무능을 질타하며 출근길 시민들이 붐비는 아테네 도심의 광장에서 자살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올해 77세인 이 노인은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의 지하철 출구 인근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신타그마 광장은 그리스 당국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장 역할을 해온 곳으로 노인 자살 당시에는 출근하는 시민들로 붐볐다.

노인의 소지품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한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노인은 이 유서에서 35년간 연금을 부었지만 정부가 이 연금만 갖고 생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면서 현 정부를 나치 점령당시의 부역자들에 비유했다.

또 "음식물을 찾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기 전에 (자살 이외에) 다른 고귀한 종말을 맞을 방안을 찾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리스 경찰은 이 노인의 이름과 자살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언론이 전한 유서내용이 사실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리스 전체가 충격에 빠졌으며, 시민 1500여명은 신타그마 광장에 모여 노인을 추모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 시위가 폭력화하면서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서고 청년들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충돌했다.

시민단체 '돈을 내지 않겠다(I won't Pay)'의 대변인 바실리스 파파도풀로스는 "약사라면 연금만 갖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 노인이 생활고로 자살로 내몰렸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 안전망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모시위를 조직한 파파도풀로스는 이번 자살은 그리스인들이 더는 긴축정책을 감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집에서 자살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자살한 곳이 긴축정책을 승인한 의사당 앞이고 정치적 의미가 담긴 유서도 있다"고 지적했다.

노인이 자살한 곳의 사이프러스 나무에는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다", "긴축정책이 살인을 했다" 등 수십통의 메시지가 내걸렸다.

내달 초 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일제히 슬픔을 표명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는 성명을 통해 "우리 동료 시민이 생을 마감한 것은 비극"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어려운 시기에 있는 만큼 우리 모두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스 집권 사회당(PASOK)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당수는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발언도 하찮고, 적절하지 않다"고 밝히고 동료 의원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정치적 논평"을 자제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제2당인 신민당의 안토니오 사마라스 당수 또한 "사람이 죽었을 때만이 아니라 절망 속에 살고 있을 때도 죽음"이라며 "이 때문에 그리스 부채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달 초 선거를 겨냥해 "불행하게도 이 노인이 첫 희생자가 아니다. 우리는 기록적인 자살률을 갖고있으며 그리스인들을 절망에서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그리스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세금 인상과 임금 및 연금 삭감 등을 포함한 긴축안에 합의한 상태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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