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이후 ‘권력 정리’ 인물 사라져… 中 상무위원 자리다툼 어느때보다 격렬

  • 동아일보

올가을 9명 중 7명 교체… 中 지도부 “이러다간 공멸”
‘보시라이 파동’ 진화 안간힘

“절대 권력자가 부재한 상태에서 천하를 둔 쟁패(爭覇)가 벌어지고 있다.”

올가을 구성될 차기 중국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중국 권력핵심부 내의 움직임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최근 중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왕리쥔(王立軍) 충칭(重慶) 시 부시장 체포사건의 배경에는 차기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자리를 둘러싼 권력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0월 열리는 공산당 18차 당대회를 앞두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이끄는 공산주의청년단파(團派·퇀파이)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정점으로 한 상하이방(上海방) 및 개국공신 고위 자제들을 지칭하는 태자당 간에 자기 계파의 상무위원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치의 독특한 체제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공산당 조직상 최고 정점에 있는 ‘집단지도체제 최고지도부’다. 총서기나 국가주석이 상무위원 중에서 선출되는 지위상 최고 권력자이긴 하지만 국가의 핵심 현안에 대해서는 상무위원 9명이 동등한 자격으로 토론을 벌이고 결정에 참가한다.

올해 정치국 상무위원 쟁탈전이 과거보다 격렬한 것은 과거처럼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덩샤오핑(鄧小平) 같은 절대 권력자의 권위와 조정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당대회에서는 후 주석을 포함한 9명의 상무위원 중 7명이 물러난다. ‘상무위원은 70세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나이 제한 불문율 때문이다. 집단지도체제인 상무위원회 한 자리 한 자리는 권력의 분점 비율과 직결된다. 마오와 덩이 실권자로 있을 때는 계파도, 상무위원 비율도 사실상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1인 독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상무위원 수도 문화대혁명 때는 11명(1966년)으로 늘거나 5명(1969년)으로 줄어들 정도로 왔다 갔다 했다.

이제 절대 권력자가 없어진 상황에서 상무위원 한 자리 한 자리의 중요성이 커졌고 별도 선거 절차도 없는 선발 과정에서 조율과 타협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 친인척 비리 등으로 물의를 빚으면 즉각 경쟁자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번에 ‘왕리쥔 사건’으로 정치생명이 흔들리고 있는 보시라이(薄熙來) 충칭 시 서기의 경우 개국공신이자 ‘8대 원로’로 추앙받은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이라는 후광이 아직 있어 정치생명이 완전히 끝날지에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바늘구멍’ 통과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흠집이 생겨 경쟁자인 퇀파이파 왕양(汪洋) 광둥(廣東) 성 서기에 비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물론 과거에도 상무위원 진출을 놓고 개인 간, 계파 간 경쟁이 치열했다. 개혁파와 보수파 간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일당 지배를 위해서는 정치 체제 안정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있어 설령 갈등 요소가 있어도 표면화하지 않거나 외부로 불거지기 전에 봉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국원이나 상무위원 등 고위 지도부의 선출 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는 것은 선출 과정에서 불가피한 잡음이 외부에 나오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010년 10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와 경쟁하는 가운데 우여곡절 끝에 사실상 ‘차기 최고지도자’로 가는 자리인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된 것도 경쟁 관계인 퇀파이와 상하이방이 타협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왕리쥔 파동’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 권력투쟁 속살의 일부가 드러날 조짐마저 보이기 때문이다. 상무위원 9명과 장 전 주석 등 원로들이 다음 달 초에 열리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협회의) 전에 조사를 마치고 사태를 마무리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지 않으면 중국의 집단지도체제, 나아가 ‘공산당 일당 지배 정치체제’ 자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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