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신해혁명 100년’ 兩岸 신경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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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쑨원 嫡子”… 中 “공산당이 반봉건 타파”

봉건왕조시대의 막을 내리고 중국 근대사의 문을 연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중국과 대만이 혁명의 적통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경쟁했다.

중국 정부는 9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100주년 기념대회를 열고 공산당이야말로 쑨원(孫文)의 삼민주의 정신을 계승한 적자라고 강조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기념사에서 “쑨 선생 서거 이후 공산당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인민이 주인이 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했다”고 역설했다.

대만은 아예 신해혁명 기념일을 대만 건국의 날로 삼고 있다. 올해를 대만건국 100주년이라고 강조한다. 3일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참석한 가운데 ‘신해혁명 100년 회고’ 토론회를 연 데 이어 10일 총통부 앞 광장에서 중국과 별도로 100주년 경축대회를 열 계획이다.

중국과 대만은 2008년 마 총통이 취임하면서 어느 때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신해혁명과 관련해서는 쑨원의 부인 쑹칭링(宋慶齡)이 공산당에 몸담았고, 아들 쑨커(孫科)는 국민당을 지지했던 것처럼 양측의 이해가 복잡하게 꼬여 있다.

양안의 신경전은 신해혁명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근본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대만은 신해혁명의 최대 의의가 국부 쑨원이 중화민국(대만의 정식 명칭)을 세운 것이며, 신해혁명의 역사가 대만의 역사라고 간주한다. 그런 만큼 대만이 봉건 잔재를 일소하고 근대국가의 문을 연 신해혁명의 적자라는 주장이다. 쑨원의 손녀인 쑨수이팡(孫穗芳)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지도자들이 할아버지의 삼민주의 이념을 왜곡하고 있다며 대만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중국은 신해혁명은 부르주아 민주혁명이며 사회주의로 가는 중간단계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쑨원을 국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후 주석은 최근 신화통신에 “신해혁명은 반식민 반봉건성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며 공산당과의 관계를 분명히 했다.

실제로 중국은 신해혁명에 대해 내심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신해혁명 발원지인 우한(武漢) 정부가 28개 유적지를 개보수하는 등 자체 행사를 추진했지만 일부는 중앙정부에 의해 제지됐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정통성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신해혁명이 공산당의 밑거름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적통은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후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말을 23번이나 되풀이했다.

한편 9일 인민대회당 행사에서는 그동안 와병·사망 오보 파동이 있었던 장쩌민(江澤民·85) 전 국가주석이 참석했다. 장 전 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국국가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신해혁명 ::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공화제를 도입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 1911년 청조가 서구 열강들에 철도 운영권을 내주는 대신 차관을 얻어 재정난을 타개하려 하자 그해 10월 10일 우창봉기를 시작으로 무장투쟁이 일어났다. 이듬해 1월 난징(南京)에서 쑨원을 임시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하지만 이후 내전과 군벌들의 할거로 혼란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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