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슨 기타, 美 정쟁의 복판에 서다

  • 동아일보

제조공장 압수수색 놓고 공화 “과잉 규제”-민주 “적법 조치” 공방

“미국 음악 산업의 상징이던 깁슨 기타가 새롭게 ‘정치’란 코드를 연주했다.”(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밥 딜런, 존 레넌 등이 애용하던 미국의 유명 기타 브랜드 ‘깁슨’이 미국 정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경기침체 해법과 기업에 대한 규제 등을 놓고 오랜 공방을 벌여왔던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에 깁슨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것.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7일 “지난달 24일 연방정부의 깁슨 본사 수색이 사건의 발단”이라고 전했다. 당시 테네시 주 내슈빌 제조공장을 급습한 법무부 요원들은 나무로 만든 기타 부품을 대량 압수했다. 인도와 마다가스카르에서 수입한 목재들이 ‘레이시법(Lacey Act)’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900년 제정된 레이시법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목재나 어류, 야생생물 등은 미국은 물론 수입국의 적합한 환경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법무부는 “이 목재들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벌목됐다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평범한 수입품 수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회에서 일자리창출법안을 발표하던 8일 정치 이슈로 비화됐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이 자리에 헨리 저스키위츠 깁슨 최고경영자(CEO)를 대동하고 나타난 것. 베이너 의장은 “깁슨은 종업원 수천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존경받는 기업”이라며 “이번 수사는 과도한 기업규제가 미 경제를 어떻게 망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역설했다.

공화당 보수 유권자 단체 티파티는 다음 달 내슈빌에서 대규모 깁슨 지지 모임을 갖겠다며 지원에 나섰다. 의회 내 상업 및 제조·무역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메리 보노 맥 의원(공화)은 “정부가 건실한 기업을 돕는 쪽으로 법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무리한 적용만 일삼는다”고 비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진보적 성향의 팝스타들이 즐겨 쓰던 깁슨이 보수 세력이 펼치는 정치 공세의 상징이 됐다”고 평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환경론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얼 블루메나워 의원(민주)은 “레이시법은 2008년 양당 합의로 현실에 맞게 손본 훌륭한 법”이라며 “수입품의 환경기준 준수가 국내 경제에도 이익이란 건 공화당도 아는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환경단체인 EIA의 앤드리아 존슨 대표도 “문제의 핵심은 불법 벌목된 목재가 국내로 수입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비이성적인 정치 쟁점화는 필요치 않다”고 지적했다.

사태가 예상외로 확산되자 깁슨 측은 당황하는 눈치다. 저스키위츠 CEO는 “깁슨은 공화 민주 어느 편도 아니고, 법 개정을 주장한 적도 없다”며 “단지 우리는 성실히 법을 지켰단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수사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치판이 먼저 결론짓고 앞서 나가는 건 적절치 않다”고 충고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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