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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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무슬림 단식축제 시작
전쟁도 멈추는 ‘성스러운 달’… 한쪽선 전투-기아 ‘死의 행렬’

‘자유, 인권, 학살, 기아가 혼재된 신성한 달(月)….’

15억 무슬림의 라마단이 1일 시작됐다. 라마단은 무슬림에게 목숨처럼 신성하고 소중한 성월(聖月)이자 단식월이다. 하지만 올해는 더욱 특별하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순간들 때문이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이다. 무슬림은 일출에서 일몰까지 금식하고 매일 5번 기도한다. 남녀간 성관계는 물론 공공장소에서 음료수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소한 행위까지 금지된다. 굶주림의 고통을 통해 평화와 이웃 사랑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총칼을 잠시 내려놓고 전쟁도 멈춘다.

하지만 ‘아랍의 봄’이 미완성으로 진행 중인 국가에선 유혈이 난무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은 라마단을 하루 앞둔 7월 31일 탱크를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에 발포해 140명을 숨지게 했다. 시위 중심 도시인 하마 한 곳에서만도 109명이 사망했다. 올 3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가 시작된 이후 최악의 유혈진압이다. 리비아의 정부군과 반군은 모두 전투를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일시적 공습 중단을 검토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반군의 요청으로 공습을 계속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는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60년 만의 가뭄으로 기아와 싸우고 있다. 단식은 고사하고 단 한 끼의 먹을 것을 찾아 전장을 가로지르고 국경을 넘는 죽음의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소말리아에 식량 지원을 시작한 유엔에 따르면 케냐 난민촌으로 향하는 길에는 굶어 죽거나 죽기 직전의 자식을 길가에 버리는 부모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프랑스 무슬림협회는 7월 31일 파리에서 라마단 성명을 내고 “동아프리카에서 기아에 직면한 수백만 명에 대한 연대와 관용의 정신을 잊지 말고 이들을 돕고 있는 구호단체를 적극 지원하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에서는 평안한 분위기 속에서 성스러운 라마단 단식이 시작됐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올해 라마단이 시작된 1일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의 시간이 26년 만에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라마단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못 먹는 대신 해가 지면 밤과 새벽에 두 차례 이상 식사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가 지면 도로에 차가 없어지고 식료품의 판매는 오히려 급증한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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