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큰 재난에 동요하지 않고 질서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위기 대응 준비가 잘 돼 있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해외의 지원을 받아들이기까지 복잡한 관료주의적 절차를 거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지난달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피해가 발생한 이후 한 달 가까이 정부 지원과 구호 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은하 외교통상부 개발협력국장(사진)은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국장은 "사건 직후 민간 차원에서 일본 돕기에 한마음으로 나섰지만 일본은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일본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기상황에 좀 더 유연하게 체제를 만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이 대외지원을 받는데 유연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뒤에야 움직이고 남에게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 국가적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과거 고베 대지진 때에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한 동안 손을 벌리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정부 지원 과정에 언제가 가장 어려웠나.
"방사능 피해 우려 때문에 파견했던 긴급구조대 107명을 철수 시키면서 외교부 직원들과 그 가족, 신속대응팀을 남겨야 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 주센다이 한국총영사관 직원과 가족 등 20여 명은 지금도 대피한 국민 100~200명을 보살피고 있다."
―정부의 지원 준비에는 부족함이 없었나.
"사건 직후 구조견을 파견하려고 보니 잘 훈련되고 검역 등의 절차를 모두 마친 '준비된 구조견'이 두 마리 밖에 없었다. 구조견을 더 보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구조견 팀을 파견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간과의 협조는 잘 됐나.
"일본 정부가 민간 지원을 신속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해외 구호 활동을 하는 민간의 역량이 굉장히 커졌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정부와 민간의 협조와 공감대 형성이 정말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독도 문제 교과서 파동을 생각하면 민간의 일본 지원이 과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국민 개개인의 선택과 판단에 맡길 문제다. 두 문제는 다른 것이고 지원을 많이 한다고 일본이 교과서 문제에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박 국장은 일본 지원 문제를 챙기는 동시에 150여 개 나라에 대한 정부 차원의 무상원조 정책 수립에도 바쁘다. 올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 개발원조총회 준비와 선진 주요 20개국(G20) 대외원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두 번이나 출장을 다녀왔다.
―11월 개발원조총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
"대외 원조 분야에서 이번 회의 전과 후의 세계는 '구약성서 시대'와 '신약성서 시대'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외원조가 주는 나라(지원국)와 받는 나라(수원국)의 1차원적 관계였다면 이번 회의에서는 지원국과 수원국 정부는 물론 양측의 민간단체와 개인 등 모든 행위자들이 참여해 포괄적 관계 형성을 논의한다."
―대외 원조의 내용도 크게 달라질 것 같다.
"그렇다. 과거의 대외원조는 지원국이 100원을 주면 계획에 따라 쓰이는지, 110원의 효과가 나는지만 봤다. 이제는 지원국의 원조가 수원국의 '개발'이라는 더 큰 목표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고 있다. 그만큼 지원국이 수원국을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소통해야 하는 셈이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지원과 개발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달라진 대외원조를 국가이익 부양과 연결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리는 인도적 차원에서 후진국을 돕지만 후진국이 지원과 개발을 통해서 더 잘 살게 되면 훌륭한 시장이 된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도록 기업 등 민간의 역량도 동시에 키워가야 한다."
―대외 원조 과정에서 한류를 더 확산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받는 나라의 정부와 주민들에게 '한국의 스토리와 느낌'을 전파할 수 있도록 문화외교 분야에도 주력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연세대 사학과 출신으로 1985년 제19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한 박 국장은 중국과 유엔 근무, 1년 동안의 미국 컬럼비아대 연수 등을 거쳐 7년 만인 2월 말 귀국했다. 그는 지난달 10일 정식 발령을 받은 바로 다음 날 동일본 대지진이 나는 바람에 이달 2일에야 부산에 사는 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 선배인 백지아 국제기구국장에 이은 현직 외교부 여성 국장이다. 남편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핵심 측근인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보.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윤완준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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