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철수하는 리비아에서… 공사현장 지키는 한국인 근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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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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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따낸 공사인데… ” 79명 ‘건설戰場’ 사수

“어떻게 해온 공사인데…. 그냥은 못 나갑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장을 지킬 겁니다.”

1341명 가운데 이제 최후의 79명만 남았다. 리비아 사태가 악화되면서 한국 근로자 1262명이 항공, 선박, 육로 등을 통해 이미 리비아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썰물처럼 이어진 탈출 행렬 속에서 79명의 모습은 없었다. 대우건설 51명, 현대건설 12명, 한일건설 7명, 한미파슨스 3명, 기타 현지 업체 6명 등 우리 건설 근로자들은 의연히 리비아 현장을 지키고 있다.

○ “이대론 못 간다”


미스라타 복합화력발전소(5억4174만 달러) 등 7곳에서 20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대우건설은 트리폴리 19명, 수르트 3명, 미스라타 10명, 벵가지 15명, 즈위티나 4명 등 51명을 현장에 남겼다. 현대건설도 트리폴리 지사에 2명, 수르트(알칼리즈) 사리르 발전소에 각 4명, 벵가지 송전선 현장에 2명이 남아 있다. 한일건설은 자위야와 사르만의 주택단지 건설현장을 각각 5명과 2명의 필수인원이 지키고 있다.

남는 인원은 잔류를 희망한 사람 가운데 관리자급을 가려 뽑아 결정했다.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떠났지만 책임자들까지 현장을 버릴 순 없었다. 현대건설은 지사장 현장소장 관리부장 작업반장 등만 남았고 대우건설도 지사장과 현장소장, 그리고 자원자 가운데 현장 유지 필수인력만 남겼다.

잔류 인력의 최대 미션은 현장 사수. 발주처와 계속 업무를 협의하고 수백억 원에 달하는 현장 자재 및 중장비, 서류 등을 보존해야 한다. 현장의 방호시설을 보강하고 현지에 함께 남은 제3국 외국인 근로자를 관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사태가 진정된 뒤에는 바로 공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상황은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게 남은 이들의 전언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시설이 도심과 수십 km 떨어진 외곽인 데다 국가기간시설이어서 비교적 안전하다”며 “현지 경찰과 리비아전력청 등 발주처에서 경비를 서주고 있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현장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태가 조기에 해결될 기미가 없어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한일건설 자위야 현장 직원은 “현장은 교전이 벌어지는 시내에서 차로 15분쯤 떨어져 있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은 없다”면서도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총성과 탱크가 쏟아내는 포성에 놀랄 때가 자주 있다”고 말했다.

안전하다고 보고 있지만 가족들 얘기가 나오면 목이 멘다. 현지의 한 업체 직원은 “가족들은 당연히 불안해하지만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이해해 줄 것”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달라”고 말했다.

○ “끝까지 버티는 보람 있을 것”


리비아 대탈출 속에서도 건설사들이 현장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발주처 및 지역 주민들과의 신뢰 관계 때문. 현대건설 관계자는 “우리 건설사들이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꾸준히 공사를 따낼 수 있었던 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준 것이 주효했다”며 “꾸준히 성과를 올리려면 현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상황이 어렵다고 현장을 쉽게 떠날 순 없다”고 말했다.

우리 건설사들의 ‘현장 사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외국 건설사들이 황급히 빠져나가는 현장을 여러 차례 지켰다.

무작정 떠났다가 나중에 현장 파괴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측의 귀책사유로 미수금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 내란 등의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 현장만 안전하게 유지한다면 공사비의 15%인 선수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 나중에 공사를 재개할 때도 공기 연장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지역민의 믿음을 사 공사를 더 따낼 수도 있다. 과거 대우건설은 리비아, SK건설은 쿠웨이트에서 사태가 해결된 이후 대형 공사를 잇달아 수주했다.

한일건설 관계자는 “리비아 일대 주택 공급 부족이 심각한 만큼 사태가 진정된 뒤 어느 쪽이 집권하건 주택 보급은 최대 현안이 될 것”이라며 “리비아 재건사업이 시작될 때 ‘우리는 끝까지 남았다’는 점이 추가 발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여행금지국’ 지정 연기 ▼

한편 정부는 8일 리비아에 대한 여행금지국 지정을 연기했다. 정부는 이날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 주재로 여권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리비아를 여행금지(여행경보 4단계) 지역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현지 진출 기업들이 입을 경제적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조만간 다시 논의해 결정하기로 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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